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은 2005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던 중산층 부부 조르주와 안느의 집 앞에 누군가 보낸 정체불명의 감시 비디오테이프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다니엘 오떼유와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하는 이 부부의 일상이 그 테이프 하나로 서서히 무너진다. 이 영화는 끝까지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 미해결이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게 만든다. 1961년 파리에서 일어난 알제리인 학살 사건이 이 영화의 배경에 어떻게 자리하는지, 조르주라는 인물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영화가 범인을 밝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BBC가 21세기 위대한 영화 23위로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형식과 내용이 이렇게 정확하게 맞물리는 영화가 많지 않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가장 정교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를 한 번 보고 끝낼 수 없게 만드는 영화, 히든이 그런 작품이다.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다.
히든, 누가 보냈는지보다 중요한 것
히든은 처음부터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영화의 첫 장면이 고정된 카메라로 한 거리를 오래 비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화면이 실은 누군가 조르주의 집을 감시하며 찍은 비디오테이프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 발견의 순간이 이 영화의 모든 톤을 결정한다. 우리가 보고 있던 것이 영화의 시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이었다는 것. 그 전복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에서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에 대한 답을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 감독 스스로 이 영화를 다 보고도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발언이 이 영화의 핵심을 알려준다. 범인 찾기가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다. 감시당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이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가 이 영화의 진짜 관심사다. 영화 전체에 걸쳐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긴장을 만드는 요소다.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 없이 오로지 화면과 침묵으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 그게 하네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테이프 자체가 아니라 그 테이프 앞에서 조르주가 보이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 짐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짐작이 그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답을 주지 않는 영화가 이렇게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 히든이 그것을 증명한다. 미스터리 영화가 보통 답을 향해 달려간다면, 이 영화는 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다른 것을 보여준다. 그 다른 것이 한 인간의 죄의식이고, 그 죄의식이 만드는 균열이다. 하네케 감독이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위치 자체를 질문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장 영리한 부분이다.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영화 내내 따라온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관음의 형식이라는 것을 하네케 감독이 이 영화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누군가를 감시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 그 자각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온다.
조르주가 감추고 있는 것
히든에서 조르주는 어린 시절 알제리 출신 소년 마지드를 자신의 가족이 입양하지 못하게 거짓말로 쫓아낸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61년 파리에서 일어난 알제리인 학살 사건으로 마지드의 부모가 죽었고, 조르주의 가족이 고아가 된 마지드를 데려오려 했지만 어린 조르주가 그것을 막았다. 그 과거가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서서히 드러난다. 이 설정이 이 영화를 단순한 가정 스릴러에서 훨씬 더 큰 역사적 맥락으로 확장시킨다.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이 한 개인의 죄책감과 만나는 방식, 그게 이 영화가 정치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이유다. 조르주는 이 사실을 안느에게도, 자신의 아들에게도 숨긴다. 그 숨김이 그의 가족 안에 균열을 만든다. 다니엘 오떼유의 연기가 이 균열을 매우 정교하게 표현한다. 겉으로는 안정된 중산층 가장이지만 그 안에서 점점 불안해지는 모습, 그 불안이 표정 안에서 미세하게 드러난다. 마지드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조르주가 보이는 방어적이고 폭력적인 태도가 이 인물의 본질을 보여준다.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본능.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마지드의 아파트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의 무게를 한순간에 끌어올린다. 그 충격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조르주가 평생 회피해 온 것의 무게라는 것을 그 장면이 보여준다.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하는 안느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남편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그녀의 불안이 이 가정의 균열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부부 사이의 신뢰가 깨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매우 섬세하게 그려진다. 큰 다툼이 아니라 작은 틈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균열, 그 방식이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무겁다. 안느가 조르주를 점점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또 다른 긴장이다. 함께 산 사람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는 것, 그 감각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동시에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이 영화가 범인을 밝히지 않는 이유
히든이 범인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형식적 선택이다.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가 밝혀지면 이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 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조르주가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이 실제 누군가의 감시 때문인가, 아니면 그가 평생 억눌러온 죄의식이 만들어낸 것인가.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다. 프랑스라는 국가도 알제리에서의 과거를 오랫동안 직면하지 않고 살아왔다. 조르주 개인의 회피가 프랑스라는 국가의 역사적 회피와 겹쳐진다. 그 알레고리가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든다. 누가 감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누가 책임을 묻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학교 앞을 오래 비추는데, 그 화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다. 그 장면을 처음 본 사람과 다시 본 사람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알게 됐을 때 소름이 돋았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만든 형식적 긴장이 그 마지막 장면 하나로 완성된다. 그 마지막 장면을 찾기 위해 다시 보는 것도 이 영화를 경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경험, 그게 히든이 주는 가장 특별한 것이다. 히든은 보는 것과 발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가장 정교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미해결의 스릴러로 남고, 다시 본 사람에게는 정교하게 설계된 알레고리로 보인다. 그 두 가지 경험이 모두 이 영화의 일부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다. 한 개인의 회피가 국가의 회피로, 국가의 회피가 다시 한 개인의 불안으로 돌아오는 그 순환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가장 차갑고 가장 정확한 형식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시받는다는 것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한 일이다. 카메라가 보고 있는 것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이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진짜 의미다. 숨겨진 것은 테이프를 보낸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외면해 온 역사라는 것을 마지막에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