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 애스터 감독의 헤레디터리는 2018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공포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다. 토니 콜레트, 알렉스 울프, 밀리 샤피로 주연의 이 영화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 가족의 비밀을 담는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가 외부의 위협을 다룬다면, 헤레디터리의 공포는 가족 안에서 온다.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비밀, 애도가 어떻게 공포로 변형되는지, 그리고 토니 콜레트의 연기가 왜 이 영화의 모든 것인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가족 드라마로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있다. 점프스케어 없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 공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헤레디터리가 그 가능성을 증명한 영화다. 아리 애스터의 데뷔작이 이 수준이라는 것이 지금 봐도 놀랍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공포라는 장르가 이렇게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헤레디터리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깊이가 이 영화를 장르를 초월하게 만드는 이유다.
헤레디터리, 애도가 공포로 바뀌는 과정
헤레디터리는 공포 영화인데 처음 한 시간이 공포보다 애도에 가깝다.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 이 영화에서 공포가 시작되는 것은 외부에서 무언가가 들어와서가 아니라, 이 가족이 이미 안고 있던 것들이 표면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애도라는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이 어떻게 공포처럼 느껴지는지를 이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보여준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공포를 빨리 주지 않는다. 대신 이 가족 안에 있는 긴장과 슬픔과 죄책감을 천천히 쌓아간다. 그 쌓임이 충분히 이루어진 다음에 공포가 온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공포가 놀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누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공포가 아니라, 며칠 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공포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공포 장면이 아니라 식탁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에게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그 장면. 거기서 오가는 말들이 이 가족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두 드러낸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귀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 있는 것들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것, 그 진실을 이 영화가 식탁 하나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공포 장면이 아니라 식탁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에게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그 장면. 거기서 오가는 말들이 이 가족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두 드러낸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귀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 있는 것들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것, 헤레디터리가 말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영화가 그 답을 공포라는 형식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 답이 초자연적인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 영화를 다른 공포 영화와 구별 짓는다. 공포가 끝난 뒤에도 애도의 감각이 남는 영화, 헤레디터리가 그런 드문 경험을 준다. 공포 영화를 보고 나서 슬픔이 남는다는 것이 낯설지만, 이 영화는 정확히 그 감각을 준다. 공포와 슬픔이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것, 이 영화가 그것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 뿌리를 공포라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용감한 선택이었다.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공포의 구조
헤레디터리라는 제목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 유전, 상속, 대물림. 이 영화에서 공포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것이다. 할머니로부터 어머니 애니에게, 그리고 다시 자녀들에게. 가족이 대물림하는 것이 단순히 유전자나 재산이 아니라 비밀과 트라우마와 운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 설정이 이 영화를 단순한 악마 영화와 다르게 만드는 이유다. 악마가 개입하는 것이 맞지만, 그 악마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은 이 가족 안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것들이다. 비밀을 지키고, 진실을 말하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어떤 것을 감추어온 역사가 이 영화의 진짜 공포의 뿌리다. 그 뿌리가 충분히 깊어졌을 때, 외부의 힘이 그 뿌리를 타고 들어온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데뷔작에서 이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놀랍다. 가족 공포라는 장르가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것을 세대 전달의 문제와 이렇게 정교하게 연결한 영화는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가족 안에서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무서운 것이 꼭 악마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 때로는 아주 일상적인 방식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간다는 것. 그 생각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따라다닌다. 공포 영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점이다. 장르를 도구로 사용해서 그 장르를 넘어서는 질문을 하는 영화, 헤레디터리가 그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가족 안에서 대물림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대물림이 끊어질 수 있는지, 아니면 끊어질 수 없는 것인지를 이 영화는 끝까지 묻는다. 그 질문이 이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는 이유다. 공포 영화가 이런 질문을 남긴다는 것, 그게 헤레디터리를 다른 공포 영화와 구별 짓는다. 이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악마가 주는 공포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되는 공포. 그게 헤레디터리가 가장 오래 남기는 것이다.
토니 콜레트의 연기가 이 영화의 전부인 이유
헤레디터리에서 토니 콜레트의 연기는 이 영화를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게 만드는 핵심이다. 애니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딸의 죽음, 남편과의 갈등,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점점 무너져가는 현실 감각. 토니 콜레트는 이 모든 것을 한 사람 안에 담아낸다. 그 연기의 범위가 이 영화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다. 콜레트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특별한 이유는 과장 없이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에서 연기가 과장되면 장르적 쾌감은 있지만 진짜 무서움은 사라진다. 콜레트는 그 반대 방향을 택한다. 딸을 잃은 어머니,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티려는 사람, 그 감정이 실제 사람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섭다. 연기가 현실적일수록 그 현실 안에 있는 공포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토니 콜레트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공포 영화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연기가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들 어느 것보다 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포 영화라서 받지 못하는 것, 그 편견이 이 영화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헤레디터리는 공포 영화이기 전에 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토니 콜레트가 온몸으로 감당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토니 콜레트라는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게 이 영화가 준 가장 좋은 부수적 경험이기도 하다. 공포 장르가 이런 연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연기가 공포를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을 헤레디터리가 증명한다. 콜레트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달랐을 것이다. 그 연기와 함께 이 영화는 공포 장르를 넘어선 무언가가 됐다. 그게 헤레디터리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보고 나서 토니 콜레트라는 배우를 잊기 어렵다. 그 이름이 이 영화와 함께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