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린 송 감독의 파스트 라이브즈는 202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린 송의 장편 데뷔작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12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나영이 뉴욕에서 노라로 살아가다 어린 시절 첫사랑 해성과 24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다. 그레타 리와 유태오가 노라와 해성을 연기한다. 이 영화가 인연이라는 한국적 개념을 어떻게 이야기 안에 담는지, 세 사람이 한 바에 앉아있는 장면이 왜 이 영화의 핵심인지, 그리고 노라의 선택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가 첫 장편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그만큼 이 영화는 성숙하고 섬세하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2023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작품이다. 로튼 토마토 비평가 점수 96점이라는 수치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말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가 다르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한 일이다. 그리고 보기 전과 후가 달라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만든 것이다.
파스트 라이브즈, 인연이라는 개념
파스트 라이브즈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어 단어가 인연이다. 인연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전생에서 맺어진 연결이 이 생에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해성이 영화 안에서 이 단어를 설명할 때, 그 설명이 이 영화 전체를 담는다. 두 사람이 멀어졌지만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인연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인연이 이 생에서 끝나도 다음 생에서 이어진다는 것. 이 영화의 제목 파스트 라이브즈가 가리키는 것이 그것이다. 셀린 송 감독은 이 인연이라는 개념을 영어권 관객에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한국 관객에게는 익숙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이중성이 이 영화가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강하게 울리는 이유다. 노라가 나영으로 돌아가는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나라를 바꿨지만, 해성 앞에서는 다시 나영이 되는 그 순간. 정체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그 달라짐이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이민이 한 사람을 어떻게 분리시키는지, 그 분리가 어떤 결핍을 만드는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섬세하게 그려지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떠난 적이 있거나 익숙한 것을 두고 떠난 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경험이 없어도 이 영화가 닿는 이유는 인연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두고 떠난 적이 있다면, 그 두고 온 것이 여전히 거기 있다면, 이 영화가 말을 걸어온다. 그 말 걸기가 이 영화를 이민자 영화가 아닌 보편적인 영화로 만드는 이유다. 셀린 송 감독 자신이 이민자이고, 이 영화가 그 경험에서 나왔다. 그 직접성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진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감독이 데뷔작에서 증명한 것이다. 이 영화가 앞으로 셀린 송 감독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더 기대가 되는 감독이다. 데뷔작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감독이 드물다.
세 사람이 바에 앉아있는 이유
파스트 라이브즈의 첫 장면에서 바에 세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 세 사람이 누구인지를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추측하게 만든다. 그 추측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된다. 그 첫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다. 셀린 송 감독 자신이 경험한 실제 상황, 미국인 남편과 한국인 어린 시절 첫사랑 사이에 앉아있던 그 밤에서 이 영화가 출발했다는 것이 이 설정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보여준다. 실제 경험이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가 된다는 것, 그게 이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성이 뉴욕에 와서 노라와 그녀의 남편 아서와 함께 바에 앉아있는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어려운 장면이다. 세 사람 모두 무언가를 느끼고, 그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한다. 그레타 리의 연기가 이 장면을 가능하게 만든다. 두 남자 사이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그 상황 자체를 담아내는 그 표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아서를 연기하는 존 마가로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아내의 전생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 그 모름을 인정하면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 그 인물이 이 삼각관계를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해성과 아서가 각각 노라에게 갖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해성은 12살의 나영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아서는 지금 이 순간의 노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차이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해성이 기억하는 나영과 아서가 사랑하는 노라가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 두 사람 모두 진짜라는 것. 이 영화가 이 복잡함을 이분법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누가 더 노라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사랑하는가를 이 영화가 보여준다. 그 다름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이 영화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노라, 해성, 아서 세 사람 모두 선한 사람이고 모두 이해가 된다. 그 이해가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따라온다. 악인 없이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만드는 영화가 많지 않다.
노라의 선택이 말하는 것
파스트 라이브즈에서 노라의 선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노라는 해성이 아니라 아서를 선택했다. 더 정확하게는, 뉴욕에서 작가로 사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 안에 아서가 있다. 이 선택이 해성에 대한 감정을 없애지 않는다. 해성을 보면서 12살의 나영을 그리워하는 것, 그 그리움이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가장 성숙하게 말하는 부분이다. 사랑은 하나만이 아니고 인생의 각 시기마다 다른 모양으로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담는다.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선택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말하지 않는다. 노라가 뉴욕에 남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 선택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과 함께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낭만적인 영화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매우 성숙한 영화인 이유가 그것이다. 낭만이 아니라 선택과 그 선택이 남기는 것에 대한 영화. 파스트 라이브즈가 그런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라가 우는 이유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성을 보내는 슬픔인지, 아니면 그 감정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슬픔인지.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가장 놀랍다. 이 성숙함이 첫 영화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 이 영화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한다. 파스트 라이브즈는 울게 만드는 영화이지만 그 눈물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 설명할 수 없음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정직한 감정이다. 파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나면 자신이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이 영화가 보고 나서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오래간다. 파스트 라이브즈가 그 생각을 만드는 영화다. 두고 온 것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만남이 끝난다면, 그 끝이 어떤 모양인지를 이 영화가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이 오래 남는다. 파스트 라이브즈가 그런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가 한국계 캐나다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한국 관객에게 더 특별하게 느껴질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