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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몰락 전야의 베를린

by 멋진엄마 2026. 7. 2.

파비안 포스터
파비안 포스터

 

도미닉 그라프 감독의 파비안은 2021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과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독일 영화로, 에리히 케스트너가 1931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나치 집권 2년 전, 바이마르 공화국 마지막 시절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문학 박사 출신 카피라이터 파비안과 그의 친구 라부데, 그리고 배우를 꿈꾸는 코르넬리아의 이야기를 담는다. 톰 쉴링이 파비안을, 사스키아 로젠달이 코르넬리아를 연기한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는 붕괴 직전 시대의 공기를 살아가는 세 사람을 따라간다. 이 영화가 1931년을 배경으로 하면서 왜 지금의 영화인지, 콜라주 형식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파비안이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케스트너의 소설이 1931년에 나치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90년이 지나 영화가 됐지만 이 이야기가 낡지 않았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지금 시대에 만들어진 이유다.

파비안, 시대의 공기를 담는 방식

파비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31년 베를린의 공기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나치 집권 2년 전이다. 독자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 그런데 화면 안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 간극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묵직하게 깔린다. 베를린의 재즈 클럽, 바, 아틀리에를 누비는 파비안과 라부데의 밤, 그 활기 뒤에 이미 세계 대공황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도미닉 그라프 감독은 이 시대를 담기 위해 콜라주 형식을 선택했다. 흑백 기록 필름, 8밀리 촬영, 분할 스크린이 뒤섞인다. 이 형식이 처음에는 혼란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혼란 자체가 이 시대의 감각이다.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대, 그 시대의 질감이 이 형식 안에 담긴다. TV 드라마 부문에서 독일 그리메상을 10회 수상한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TV의 언어와 영화의 언어를 결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결합이 이 영화를 보통의 시대극과 다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나치의 등장 이후 분위기가 변하는 부분이 가장 무겁다. 웃고 떠들던 세계가 조용해지는 그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파비안이 직업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사랑을 잃는 과정이 모두 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온다. 개인의 몰락과 시대의 몰락이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 이 영화가 그것을 가장 섬세하게 보여준다. 역사를 알면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더 무겁게 만든다. 이 영화가 콜라주 형식을 선택한 것이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돈된 형식은 이 혼란한 시대를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돈되지 않은 형식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이 영화를 이 시대와 가장 정직하게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1931년의 베를린이 얼마나 지금과 닮았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 닮음이 이 영화를 역사 영화가 아닌 현재 영화로 만드는 이유다. 정성일 평론가가 이 영화를 트뤼포의 쥴 앤 짐에 비견한 것이 이 영화의 구조를 설명한다.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이 시대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부서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그 부서짐이 이 영화 3시간 내내 서서히 이루어진다.

세 인물이 만드는 이야기

파비안에서 세 인물의 이야기가 이 영화를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인물 드라마로 만든다. 파비안은 담배 회사 카피라이터이지만 문학 박사 출신이고, 세상을 도덕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이 이 시대의 부조리를 보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함께 있다. 라부데는 교수가 되기 위해 학위논문을 쓰는 파비안의 절친한 친구다. 두 사람이 베를린의 밤을 함께 누비면서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대화들이 1931년의 것이지만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코르넬리아는 법학도이면서 영화배우를 꿈꾸는 여성이다. 파비안과 사랑에 빠지지만 출세를 위해 결국 떠난다. 그 떠남이 이 영화에서 파비안에게 남기는 것이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코르넬리아의 선택이 나쁜 선택이 아니라는 것, 그냥 이 시대가 그런 선택을 강요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시대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 인물들을 통해 가장 정확하게 말한다. 사스키아 로젠달의 연기가 코르넬리아를 단순한 멜로 상대역이 아니라 시대의 압박 속에서 선택을 하는 인물로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라부데 의 이야기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의 결말이 이 시대가 지식인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 충격이 이 영화 전체의 무게를 결정한다. 톰 쉴링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오 보이에서 베를린을 배회하는 청년을 연기했던 톰 쉴링이 10년 후 이 영화에서 같은 도시를 다른 시대에 걷는다. 그 10년이 이 배우에게 무엇을 더했는지가 파비안을 보면서 느껴진다. 더 무겁고 더 복잡한 인물을 이 배우가 완전히 소화한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다. 코르넬리아와 파비안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부분이다. 시대가 두 사람을 갈라놓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직접적인 비극이다. 사랑이 시대 앞에서 무력해질 때, 그 무력함이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중 하나다. 파비안이라는 인물이 관찰자로 머무는 이유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그가 행동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과 연결된다.

1931년이 지금인 이유

파비안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이유는 1931년 베를린이 그냥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경제가 무너지고, 극단주의가 힘을 얻는 그 시대. 그 시대가 우리 시대와 닮아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도미닉 그라프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현재성을 강조한 것이 이 영화를 보면 이해된다. 케스트너의 소설이 1931년에 출판됐을 때 나치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 소설이 2021년에 영화가 됐다. 그 90년의 간격이 이 영화 안에서 느껴진다. 불태워진 책이 90년 후 영화가 됐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다. 무엇이 불태워졌는지를 알아야 무엇이 살아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 케스트너가 살아남았고, 이 이야기가 살아남았고,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 생존이 이 영화를 더 의미 있게 만든다. 3시간의 러닝타임이 처음에는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이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이 시대의 공기 속에 천천히 앉는다. 그 앉음이 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파비안이 정성일 평론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하면서 트뤼포의 쥴 앤 짐에 비견한 영화라는 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된다. 친구들이 시대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는 이야기, 그 무너짐이 아름다움과 함께 온다는 것. 파비안이 지금 봐야 하는 영화인 이유가 그것이다. 이 영화가 3시간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계 안에 충분히 머물렀을 때 비로소 이 시대가 느껴지고, 그 느낌이 이 영화가 주려는 것이다. 3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영화, 파비안이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다. 독일 영화의 힘이 이 영화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볼 것이다. 1931년 베를린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 그게 파비안이 지금 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파비안, 지금 꼭 봐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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