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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권력이 무너지는 소리

by 멋진엄마 2026. 6. 15.

타르 포스터
타르 포스터

 

토드 필드 감독의 타르는 2022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상임 지휘자 리디아 타르가 정점에서 추락하는 과정을 담는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하는 리디아 타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물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잃어가는지를 158분에 걸쳐 그린다. 이 영화가 권력이라는 주제를 클래식 음악계라는 배경으로 가져온 이유,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이 영화를 어떻게 지탱하는지, 그리고 타르의 몰락이 왜 단순한 단죄로 느껴지지 않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토드 필드 감독의 16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인 더 베드룸과 리틀 칠드런으로 주목받았던 그가 이 영화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케이트 블란쳇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보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다른 배우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영화다. 그녀의 연기가 이 영화 자체를 완성한다. 158분 동안 화면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연기, 그게 타르의 핵심이다.

타르, 권력자의 언어와 시간

타르에서 리디아 타르는 영화 초반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곧 오케스트라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지휘자가 박자를 만든다는 것, 시간을 지배한다는 것. 그 말 안에 이 인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타르는 자신이 시간을, 음악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토드 필드 감독은 이 영화 초반부를 매우 길게 가져간다. 타르가 인터뷰를 하고, 강의를 하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한참 이어진다. 이 길이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길이가 의도적이다. 관객이 타르라는 인물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충분히 노출되어야, 영화 후반부에서 그 권력이 무너질 때의 충격이 제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관객을 일종의 공모자로 만든다. 타르의 매력에 빠진 관객이, 나중에 그 매력이 권력의 작동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과정이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설계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 지휘자로서의 권위, 교육자로서의 카리스마,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서의 통제욕을 모두 같은 톤으로 표현한다. 그 일관성이 이 인물을 무섭게 만든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이 너무 당연해서 그것이 권력인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 감각을 케이트 블란쳇이 정확하게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타르가 학생을 가르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서 타르는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거침없이 말하는데, 그 말들이 동시에 권력의 행사이기도 하다. 가르침과 지배가 구분되지 않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인터뷰 장면들에서 한 번도 톤을 잃지 않는다. 그 일관성이 오히려 더 무섭다. 권력자가 가면을 벗는 순간이 아니라, 그 가면 자체가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158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인물을 완전히 알게 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타르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설계다.

몰락이 단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타르의 후반부에서 리디아 타르는 빠르게 무너진다. 과거의 행적이 드러나고, 사회적 위치가 흔들리고,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런데 이 몰락이 영화를 보는 동안 단순한 정의의 실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토드 필드 감독이 이 몰락을 통쾌함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잘못을 단순한 악행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권력을 잃었을 때 그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타르가 도착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이 영화의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른 추락으로 읽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음악으로의 회귀로 읽는다. 토드 필드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이 모호함을 가능하게 만든다. 몰락한 타르의 얼굴에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음악에 대한 사랑이 보인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이 인물을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 이유다. 이 모호함을 견디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경험의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응징인지 구원인지, 그 모호함이 이 영화가 권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다. 권력을 잃은 사람도 결국 한 명의 음악가로 남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면죄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는 것이 이 영화가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그리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단순한 권선징악이었다면 이 영화는 훨씬 쉬운 영화가 됐을 것이다. 타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쉬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사람에게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그 불편함을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이 이 영화의 태도다.

음악계라는 배경이 하는 일

타르가 클래식 음악계, 그중에서도 지휘자라는 위치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음악을 해석하고, 박자를 정하고, 단원들의 연주 방식을 결정한다. 그 권력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토드 필드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정당화의 언어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타르가 자신의 행동을 예술적 비전이라는 언어로 설명할 때, 그 언어가 권력의 행사를 가린다. 이 영화에서 음악 자체는 매우 진지하게 다뤄진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음악에 대한 타르의 해석이 진심이라는 것이 영화 내내 느껴진다. 그 진심이 권력의 남용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복잡함이다.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음악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커의 음악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그녀가 이 영화에서 만든 음악은 타르의 몰락을 그리스 비극처럼 만든다. 음악이 이렇게 한 인물의 심리와 운명을 동시에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얻는 것이 권력의 가장 정제된 형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은 거칠게 행사될 때보다 세련된 언어와 예술의 이름으로 행사될 때 더 보기 어렵다. 그 보기 어려움이 이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는 질문이 된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 우리가 따르는 권위들 안에도 이런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질문을 안고 사는 것, 그게 타르가 관객에게 남기는 것이다. 타르가 그 보기 어려움을 158분에 걸쳐 보이게 만든다. 그게 이 영화가 단순한 권력 영화가 아닌 이유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세계가 가진 권위와 전통이라는 이미지, 그 이미지 안에 권력의 가장 정교한 형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이 영화가 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자신이 존경하는 세계 안에 이런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가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타르를 보고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의 세계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한 일이다. 권위와 권력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를 이 영화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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