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는 2024년 개봉해 아카데미 각색상, BAFTA 작품상·각색상·편집상,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하고 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앙상블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주목받은 버거 감독이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했다.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출연한다. 교황이 갑작스럽게 서거한 후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 콘클라베가 시작되고, 로렌스 추기경이 그 과정을 총괄하면서 교회 내부의 음모와 비밀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종교 스릴러를 어떻게 만드는지, 랄프 파인즈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신앙과 권력에 대해 묻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로튼토마토 93% 신선도를 기록하며 2024년 가장 완성도 높은 스릴러 중 하나로 꼽혔다. 지적인 엔터테인먼트라는 평가가 이 영화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신앙에 대한 진지한 영화라는 이 이중성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다.
콘클라베, 밀실 정치가 만드는 긴장
콘클라베에서 긴장감의 원천은 폐쇄된 공간이다. 시스티나 성당에 갇힌 추기경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진행되는 비밀 선거. 이 설정이 이 영화의 긴장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구조다. 영화 전체가 거의 바티칸이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그 공간이 감옥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소라는 이중성이 이 영화의 긴장을 만든다. 추기경들은 겉으로는 기도하고 묵상하지만, 실제로는 협박하고 거래하고 비밀을 캐낸다. 그 위선의 구조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유력한 교황 후보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지지가 무너진다. 이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긴장감을 쌓아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연출 성취다. 로렌스 추기경이 이 과정에서 신앙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의심하는 인물. 그 모순이 이 영화를 종교 영화이면서 인간 영화로 만드는 이유다. 폴커 베르텔만의 음악도 이 긴장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리스털 바셰라는 독특한 악기가 만드는 소리가 이 영화의 공기를 결정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교황 선거라는 과정이 얼마나 세속적인 정치와 닮아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장 인간적인 정치, 그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바티칸을 다르게 보게 된다. 그 다름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기는 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 영화가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의 부조리함을 담았다면, 이 영화에서는 종교 권력의 부조리함을 담는다. 그 일관성이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흥미롭게 만든다. 닫힌 공간 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권력의 지형도를 추적하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유력한 후보가 등장하고 무너지는 과정의 반복이 이 영화에서 절대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그 긴장의 축적 때문이다. 버거 감독의 연출이 이 반복을 매번 다른 감각으로 만든다.
랄프 파인즈가 이 영화에서 하는 것
콘클라베는 랄프 파인즈의 영화다. 로렌스 추기경이 이 영화의 중심이고, 그 인물을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다. 이 배우가 이 역할에서 보여주는 것이 절제와 감정 사이의 정확한 균형이다. 추기경이라는 인물이 가진 위엄과 그 위엄 아래에 있는 의심과 피로가 동시에 화면에 있다. 랄프 파인즈가 골든글로브 드라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당연하다. 이 배우가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탁월한 연기다.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앙상블도 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각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추기경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충돌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드라마를 만든다. 전미 비평가 위원회가 이 영화에 앙상블상을 준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확하게 짚은 것이다.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연기하는 수녀 아그네스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성들만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이 여성 인물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만든다. 이 인물이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다.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소외된 존재가 이 영화의 마지막을 바꾼다. 개인적으로 랄프 파인즈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표정이 이 영화의 전부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그 표정이 신앙과 의심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설명하기 어려움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좋은 스릴러는 답 대신 질문을 남긴다. 콘클라베가 그런 영화다. 스탠리 투치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진보적 개혁가 벨리니 추기경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심이다. 로렌스와 벨리니 두 인물의 관계가 이 영화의 감정을 만드는 핵심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다른 방식을 택하는 두 사람, 그 차이가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떤 방식으로 교회를 개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진지하게 살아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신앙과 권력에 묻는 것
콘클라베는 종교 영화이지만 신앙을 찬양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묻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추기경들이 기도하는 것과 협박하는 것이 같은 공간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 그 동시성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이 영화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가부장제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성스러운 제도 안에 있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들, 그 욕망들이 신앙의 언어로 포장될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 영화가 보여준다. 그리고 그 포장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이 영화가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바티칸 안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이 동시에 인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 콘클라베가 그것을 말한다. 마지막 반전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 반전이 이 영화가 묻는 모든 질문의 답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문이다. 2025년 4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제로 서거하면서 이 영화가 역주행 흥행을 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현실 연결성을 말해준다. 픽션이 갑자기 현실이 된 그 순간이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콘클라베를 보고 나서 신앙이라는 것이 제도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가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한다는 것, 그 차이가 이 영화를 반종교 영화가 아닌 더 깊은 영화로 만드는 이유다. 지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원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가 신의 선물이라는 로튼토마토의 평가가 과하지 않다. 2025년 4월 실제 교황이 서거하고 콘클라베가 열리면서 이 영화가 다시 주목받았다. 픽션이 현실이 될 때 이 영화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 과정을 담았는지를 알게 된다. 콘클라베는 현실에서도 통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교황 선거의 과정이 실제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생각하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철저함이 이 영화를 단순한 픽션 이상으로 만드는 이유다. 콘클라베가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것이 그 철저함에 대한 인정이다. 원작 소설을 이렇게 영화적으로 번역한 각본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