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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Yi Yi),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절반

by 멋진엄마 2026. 5. 26.

Yi Yi 포스터
Yi Yi 포스터

 

에드워드 양 감독의 이이는 2000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대만 타이베이의 한 가족이 겪는 3시간짜리 이야기다.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네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담아낸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절반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은 어린 아들 양양이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일어나는 것들이 왜 하나도 지루하지 않은지, 각각의 시선이 어떻게 하나의 삶을 완성하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끝난 뒤 왜 오래 마음에 남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마지막 장편이기도 한 이 영화는, 지금도 세계 각지의 영화 비평가들이 역대 최고의 영화 목록에 올리는 작품이다. 3시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험을 주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대만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자, 21세기 초 세계 영화가 도달한 한 정점이다. 보는 동안 내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 그게 이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이, 뒷모습을 찍는 아이의 눈

이이에서 여덟 살 양양은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선생님이 왜 앞모습을 찍지 않느냐고 핀잔을 줄 때 양양은 대답한다. 사람들이 자기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자신이 대신 보여주려고 찍는다고. 이 대사 하나가 이이라는 영화 전체를 설명한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만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절반이 항상 존재한다. 양양이 카메라로 담는 것은 뒷모습이지만, 그 뒷모습 안에 그 사람이 자신을 볼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 단순한 설정을 통해 이 영화의 주제 전체를 압축한다. 이이라는 제목 자체도 중국어로 하나하나, 즉 하나씩을 의미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절반씩만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 가족 네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살지만 각자 전혀 다른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3시간에 걸쳐 조용히 보여준다. 아버지 엔제이는 옛사랑을 다시 만나면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본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병간호와 자신의 공허함 사이에서 흔들린다. 사춘기 딸은 첫사랑의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양양은 카메라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담는다. 네 사람이 같은 집 안에 있지만, 이 영화는 그 네 사람이 얼마나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각각의 우주가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서로 모르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가족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없이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양양의 뒷모습 사진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 사진들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를 담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 그 감각이 영화 내내 조용하게 흐른다. 양양이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순한 아이의 취미가 아니라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절반이 있다는 것, 그 절반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 영화가 3시간에 걸쳐 조용히 묻는다. 그 질문 앞에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을 오래 안고 살게 한다. 양양이 찍은 사진들이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상상 속에서 계속 쌓인다. 그 사진들이 어떤 것들 일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이이가 남기는 가장 구체적인 여운이다.

3시간이 하나도 길지 않은 이유

이이의 러닝타임은 173분이다. 거의 3시간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시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그냥 삶이 흘러간다. 아버지는 일본 출장에서 옛사랑을 만나고, 딸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양양은 학교에서 여자아이에게 물을 뿌렸다가 선생님에게 혼난다. 이것들이 동시에, 각자의 속도로 진행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이 영화에서 선택한 거리감이 중요하다. 카메라가 인물들과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클로즈업보다 미디엄숏이 많고, 인물보다 공간이 더 많이 보인다. 그 거리가 이 영화를 관찰하는 경험으로 만든다. 관객은 이 가족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옆집에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것처럼 본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더 깊이 있게 들어오는 역설이 이 영화에서 작동한다. 가까이 들여다볼 때보다 멀리서 볼 때 더 많이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이 가족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내 이야기처럼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가 공감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템포가 처음에는 느리게 느껴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리듬에 완전히 들어가게 되는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그 리듬에 들어가고 나면 3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타이베이라는 도시와 이 가족의 일상이 마치 내가 오래 알고 있던 것처럼 친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가장 독특한 감각이다. 영화가 끝날 때 이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타이베이라는 도시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가본 적 없어도 아는 도시가 된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3시간의 결과다. 이이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할 때 3시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보기 시작하면 그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이 영화가 그 경험을 준다는 사실, 그것 하나가 이이를 권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끝나고도 오래 남는 이유

이이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그 가족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특별히 강렬한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다. 폭발적인 감정 씬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오래 남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끝날 때 어떤 것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옛사랑은 그냥 지나간다. 딸은 상처를 받았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 미완성이 오히려 삶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영화 속 이야기들이 해결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것, 그게 실제 삶이 작동하는 방식과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엔제이가 옛사랑 앞에서 하는 말, 사람은 죽기 전에 살아온 것의 세 배를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 말. 그 대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따라온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대사다. 개인적으로 이이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이 그 대사와 양양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에게 못 해준 이야기를 하는 양양의 목소리가 이 영화의 마지막에 있다. 그 목소리 안에 이 영화 전체가 담겨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절반이 항상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이 항상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계속 질문으로 남는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이 영화 이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이가 그의 마지막 장편이 됐다. 그 사실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이 살아온 것의 세 배를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 말이 감독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에드워드 양은 계속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좋은 영화가 하는 일이다. 이이가 바로 그런 영화다. 보고 나면 감독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는 영화, 그 아쉬움이 이 영화를 더 소중하게 만든다. 이이가 세상에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3시간이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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