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 폴리 감독의 위민 토킹은 2023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09년 볼리비아의 고립된 메노파 종교 공동체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마을 남성들이 저질러온 연쇄 성범죄를 알게 된 여성들이 헛간에 모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싸우는 것, 떠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지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제시 버클리 등의 앙상블 연기가 이 영화를 지탱한다. 영화 전체가 거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이 왜 지루하지 않은지, 세 선택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말하는 것이 행동이 된다는 것, 침묵을 깨는 것이 이미 저항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헛간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가 세상 밖으로 향하는 방식, 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 아카데미 각색상이 이 영화에 주어진 이유가 그 번역의 정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언어를 영화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이 영화에서 얼마나 완벽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완벽함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대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위민 토킹, 대화만으로 만드는 긴장
위민 토킹에서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헛간 안에서 벌어진다. 여성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액션이 없고, 폭발이 없고, 극적인 물리적 사건이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 대화들이 진짜 싸움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의견이 다르다.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용서하고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이 의견들이 부딪히는 방식이 이 영화의 드라마를 만든다. 그 드라마가 총이나 칼 없이 말로만 이루어지는데, 말이 이렇게 긴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사라 폴리 감독이 미리엄 테이브스의 소설을 각색한 방식이 탁월하다. 소설의 언어를 영화의 언어로 번역하면서 대화의 밀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 대화들을 살아있게 만든다. 루니 마라의 오나, 클레어 포이의 살로메, 제시 버클리의 마리체. 세 인물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 대화를 이끈다. 이 세 인물이 동시에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단순한 입장 발표가 아닌 이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살로메가 자신의 딸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가장 강렬하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에서 클레어 포이의 분노가 화면 밖으로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그 분노가 폭발하지 않는다. 말로 담긴다. 그 담김이 이 영화에서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말한다는 것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기는 가장 오래가는 것이다. 대화 영화가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 위민 토킹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말이 총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104분 동안 증명한다. 그리고 그 증명이 설득력 있는 이유가 배우들의 앙상블 때문이다. 세 배우가 같은 공간 안에서 부딪히는 방식이 이 영화를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앙상블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대화 영화가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 배우가 증명한다. 그리고 그 강렬함이 이 영화를 아카데미 각색상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 대화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 소설과 이 영화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면 두 매체가 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다르게 전달하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세 선택지가 말하는 것
위민 토킹에서 여성들 앞에 놓인 세 가지 선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싸우는 것, 떠나는 것은 단순한 상황의 선택지가 아니다. 이 세 가지가 여성들이 폭력 앞에서 역사적으로 가져온 세 가지 반응을 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체념이고 순응이다. 싸우는 것은 저항이지만 더 큰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떠나는 것은 해방이지만 자신이 아는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쉽지 않다는 것, 이 영화가 그 어려움을 말의 형태로 담아낸다. 싸우는 것을 주장하는 살로메의 분노, 떠나는 것을 주장하는 오 나의 논리, 남아야 한다는 마리체의 두려움. 이 세 가지가 모두 이해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부분이다.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다. 사라 폴리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여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선택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 무게를 느끼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보는 경험의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이 마지막 선택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나눈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들 안에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행동이라는 것, 침묵하지 않는 것이 이미 저항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2009년의 헛간 안에서 나눈 대화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영화가 특정 종교 공동체의 이야기이지만 보편적으로 읽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어떤 공동체든, 어떤 시대든 폭력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반복된다. 그 선택의 과정을 이렇게 정직하게 담은 영화가 흔치 않다. 이 영화가 특정한 답을 주지 않고 그 과정만 보여주는 방식이 이 영화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을 각자가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계속 따라온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
위민 토킹은 2009년 볼리비아의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폭력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폭력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오는 것일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어느 시대에도 유효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더 직접적으로 들리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인 2022년이 어떤 해였는지를 생각하면 이 영화가 왜 지금 만들어졌는지가 이해된다. 미투 운동 이후, 그리고 여성의 권리가 다시 후퇴하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대. 이 영화에서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가 단순히 2009년 볼리비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화처럼 들린다. 벤 위쇼가 연기하는 남성 어거스트가 이 영화에서 기록자로 등장하는 방식도 의미심장하다. 남성이 여성의 대화를 기록한다는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불편함도 이 영화가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이야기가 남성의 언어로 기록되어 온 역사가 거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말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침묵을 강요받는 공간에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행위인지. 그리고 그 말들이 어떻게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말들이 어떻게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위민 토킹이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2022년이라는 시대에 이 영화가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침묵해 온 것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 돌아봄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위민 토킹은 불편한 영화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그 불편함을 감당하고 보는 것,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방법대로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