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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피보다 진한 유대의 의미

by 멋진엄마 2026. 4. 20.

어느 가족 포스터
어느 가족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으로, 피보다 진한 유대가 결말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일본 사회의 균열을 조용히 담아낸 연출의 힘이라는 세 가지 시선으로 이 영화가 왜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서는지 살펴봅니다. 도쿄 변두리의 낡은 집에서 혈연 없이 모여 사는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처음엔 따뜻한 가족물처럼 보이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그 따뜻함의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진짜 가족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가족이 혈연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 그 전제를 이 영화가 얼마나 조용하고 단호하게 흔드는지가 어느 가족을 지금도 이야기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어느 가족 피보다 진한 유대, 결말이 말하는 것

어느 가족의 결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입니다. 경찰의 수사로 이 가족의 실체가 드러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쇼타는 시설로 돌아가고, 유리는 생모에게 돌아가고, 오사무와 노부요는 각자의 처벌을 받습니다. 하츠에 할머니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 이후에도 아무도 그를 찾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결말은 비극입니다. 그런데 고레에다는 이 결말을 비극으로만 처리하지 않습니다. 쇼타가 버스 창밖으로 오사무의 모습을 찾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유리가 혼자 베란다에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은 이 아이들이 그 가족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조용하게 보여줍니다. 혈연 가족으로 돌아갔지만 그 안에서 더 외로워 보이는 유리의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을 압축합니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법적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를 선택한 관계인가. 고레에다는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냥 두 상황을 나란히 놓고 관객이 느끼게 합니다. 결말 이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는데, 어느 가족이 딱 그랬습니다. 유리의 마지막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법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간 아이가 왜 더 쓸쓸해 보이는지, 그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형태가 법이나 혈연이 아닌 선택과 돌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이 맞다고 하는 것과 감정이 맞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결말 장면 하나로 경험했습니다. 고레에다가 이 장면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순간이었습니다.

가족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여섯 명은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집에 모였습니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사실혼 관계이고, 하츠에 할머니는 전 남편의 재혼 가정과 얽힌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아키는 할머니의 전 남편 아들의 딸로 어딘가 불안정한 위치에 있습니다. 쇼타는 어딘가에서 데려온 아이이고, 유리는 이웃의 방임된 아이를 데려온 것입니다. 이들을 묶는 건 법적 관계도, 혈연도 아닙니다.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고, 같은 공간에서 잠드는 일상입니다. 고레에다는 이 일상을 매우 섬세하게 담습니다. 가족이 가족다워 보이는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행위들에서 온다는 걸 화면 안에서 보여줍니다. 함께 불꽃놀이를 보는 장면, 해변에서 노는 장면, 좁은 방에 다 같이 누워 있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감정적 토대를 만듭니다. 그런데 고레에다는 이 따뜻함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도 함께 보여줍니다. 이 가족이 생존하는 방식이 복지 수당 수령과 좀도둑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유대가 가진 아름다움과 그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사이의 간극이 생깁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이 영화를 둘러싼 핵심 긴장입니다. 이 가족이 따뜻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이게 지속 가능한 방식인가를 동시에 묻게 됩니다. 두 감각이 충돌하는 그 자리에서 이 영화가 살아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균열을 담은 방식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의 특정 현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복지 사각지대, 아동 방임, 비정규직 노동, 빈곤. 이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오사무는 일용직 노동자이고, 노부요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당하고, 아키는 성인 남성들을 상대로 한 업소에서 일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살게 된 이유를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줄 뿐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가 일본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 인물들의 삶이 어떤 구조 안에 놓여 있는지는 화면 안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복지 수당을 여러 명이 공유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정식 직업을 갖기 어려운 환경. 이것들이 이 가족이 좀도둑질을 하는 배경입니다. 고레에다는 이 행위를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그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도덕적 판단을 관객에게 넘깁니다. 하츠에 할머니가 죽은 뒤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설정도 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읽힙니다. 가족도, 국가도, 어느 시스템도 이 사람의 죽음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 존재가 사라져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회의 균열이 이 장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일본 사회에 대해 따로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인데,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그냥 보여주는 것만으로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갖게 만드는 방식이 고레에다 감독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걸 이 영화로 다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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