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애프터선, 기억이 닿지 않는 아버지

by 멋진엄마 2026. 6. 3.

애프터선 포스터
애프터선 포스터

 

샬럿 웰스 감독의 애프터선은 2022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공개된 이후 그해 가장 많이 이야기된 영화 중 하나가 됐다. 폴 메스칼과 프랭키 코리오 주연의 이 영화는 열한 살 소피가 아버지 캘럼과 함께한 터키 여행을 담은 캠코더 영상을 어른이 된 뒤 다시 보면서 시작된다. 그 여행이 왜 이 영화에서 그렇게 슬픈지, 아이의 시선이 놓쳤던 것을 어른의 시선이 발견하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폴 메스칼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어떤 감각을 만드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 전혀 다른 영화가 되는 경험을 주는 작품이다. 샬럿 웰스의 데뷔작이 이 완성도라는 것이 지금도 믿기 어렵다. 80분 남짓한 짧은 영화인데, 그 안에 담긴 것이 3시간짜리 영화보다 더 많다고 느껴진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에게 무조건 권하고 싶다. 단, 혼자 볼 것을 권한다. 이 영화가 주는 감각은 혼자 받아야 한다. 그리고 보고 나서 한동안 그 감각 안에 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이 영화가 더 깊어진다. 혼자 보고 나서 혼자 그 감각 안에 있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애프터선, 아이가 보지 못한 것들

애프터선에서 소피는 열한 살이다. 아버지와 함께한 그 여행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지 못한 채로 여행하고 있다. 캠코더로 아버지를 찍고, 수영하고, 다른 투숙객들과 어울린다. 그 시간들이 카메라 앞에서 평범한 휴가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평범함 뒤에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캘럼이 혼자 발코니에 서 있는 밤,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 소피가 잠든 뒤 그가 하는 것들. 아이는 아버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내면에 닿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닿지 못함이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의 핵심이다. 어른이 된 소피가 그 캠코더 영상을 다시 보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의 눈빛, 웃음 뒤에 있는 것, 혼자 있을 때와 소피 앞에 있을 때의 차이. 어른의 눈이 어린 시절의 기억 안에서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경험, 애프터선이 그 경험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 완전히 달랐다. 처음 볼 때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보이는지 몰랐다. 두 번째 볼 때는 첫 장면부터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그 두 번의 경험이 모두 이 영화의 일부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점이다.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이 같은 화면 위에서 공존하는 영화, 그게 애프터선이다. 이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성장 영화나 단순한 애도 영화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피의 여행과 어른 소피의 기억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겹친다. 그 겹침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감각이고, 이 영화를 두 번 보게 만드는 이유다. 두 번째 봤을 때 첫 장면부터 이미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특별한 경험이다. 처음 본 것과 두 번째 본 것이 이렇게 다른 영화가 많지 않다. 그 차이가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두 번 봐야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다.

폴 메스칼이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

애프터선에서 캘럼이라는 인물은 대사가 많지 않다. 딸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소피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함께 웃고, 여행을 즐기게 해주려 한다. 그런데 그 노력 안에, 그 웃음 안에 무언가가 계속 보인다. 폴 메스칼은 이 역할에서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캘럼이 어떤 상태인지를 직접 말하는 장면이 없다. 대신 혼자 있을 때의 몸의 자세, 소피가 보지 않을 때의 표정, 잠들지 못하는 밤. 이 것들이 캘럼에 대해 말한다. 폴 메스칼은 이 모든 것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과장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는 사람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그 존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폴 메스칼이라는 배우를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이 역할이 강렬하게 남는다. 연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이 인물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폴 메스칼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소피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에서 캘럼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지나간다. 딸과 함께 있는 기쁨, 그리고 그 기쁨 뒤에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영화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관객이 그것을 느끼게 두는 것이다. 그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두는 것, 그 방식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캘럼이라는 인물이 끝나고도 오래 따라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 설명하지 않음에 있다. 설명됐다면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폴 메스칼이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당연하다. 이 연기를 통해 그가 얼마나 넓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배우인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가 이 역할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탁월한 판단이었는지도. 애프터선이 폴 메스칼을 세상에 알린 영화라는 것, 그 사실이 이 영화와 이 배우 모두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기억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하여

애프터선은 기억에 대한 영화다. 더 정확하게는 기억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영화다. 소피가 기억하는 그 여행과, 그 여행 안에 실제로 있었던 것 사이의 간극. 어른이 된 소피가 캠코더 영상을 다시 볼 때,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나머지를 이제는 알 수도 없다는 것. 그 사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다. 기억은 있지만 그 기억 안에 없는 것이 있다. 그 없음이 이 영화 전체에 흐른다. 그 흐름 안에 관객도 자신의 기억을 가져다 놓게 된다. 아버지가 그 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딸은 몰랐고, 그것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 되돌아가서 물어볼 수 없다는 것. 기억은 있지만 그 기억 안에 없는 것이 있다. 그 없음이 이 영화 전체에 흐른다. 샬럿 웰스 감독이 이 영화를 자전적인 경험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감각이 매우 구체적이고 개인적이다. 특정 노래가 나올 때의 감각, 여름 해변의 빛, 캠코더 화질. 이 것들이 어떤 특정한 기억의 감각처럼 느껴진다. 그 감각이 관객 자신의 기억과 겹치는 순간, 이 영화가 개인적인 것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랫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각했다. 그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을까.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것들 중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을까. 그 질문이 이 영화가 끝나고 남기는 것이다. 애프터선은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어지는 영화다. 그 침묵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정직한 반응이다. 무엇을 느꼈는지 말로 정리하기 전에 그냥 그 감각 안에 잠시 있게 된다. 그게 이 영화가 마지막에 하는 일이다. 기억과 상실과 시간에 대해 이렇게 조용하고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애프터선이 보여준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게 이 영화가 한 일이다. 그 감각을 주는 영화가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하면 애프터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게 된다. 이 영화가 샬럿 웰스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 그리고 그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는 것. 애프터선이 남기는 마지막 감각이 그것이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