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는 2017년 개봉해 나문희가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대종상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작품이다. 뉴욕 아시아 영화제 관객상도 수상했으며, 실관람객 평점 9.24에 누적 관객 328만 명을 기록했다. 구청 민원 8000건으로 악명 높은 도깨비 할머니 옥분과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가 영어를 통해 엮이면서 옥분의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미국 의회에서 증언한 실화를 모티브로 했으며, 나문희의 미국 의회 증언 장면은 실제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 시작해 어떻게 그 무게를 감당하는지, 나문희의 연기가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드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무엇을 다르게 만드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코미디로 포장된 이 영화가 어떻게 관객을 역사의 무게 앞에 세우는지, 그 설계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취다.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영화가 아닌 이유가 그 설계에 있다. 형식이 내용을 담는 방식에 대한 가장 영리한 예시 중 하나로 이 영화를 꼽는다.
아이 캔 스피크, 코미디가 비극을 담는 방식
아이 캔 스피크의 전반부는 코미디다. 구청에 민원 8000건을 넣는 옥분 할매와 원칙대로만 처리하는 민재가 충돌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초반을 이끈다. 그 충돌이 웃기다. 그런데 이 웃음이 이 영화의 전략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웃게 만든 다음에 무겁게 만드는 것,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계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 영화의 중반부에서 드러난다.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영화의 감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코미디였던 영화가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김현석 감독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하나의 영화 안에서 소화하는지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충돌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는 방식, 그게 이 영화가 상업 영화이면서 동시에 의미 있는 영화가 되는 이유다. 코미디와 역사 드라마를 같은 영화 안에서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이 영화가 얼마나 잘 해냈는지를 더 인정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이 이 영화를 설교가 아닌 이야기로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옥분이 민재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이 가장 마음 아팠다. 그 순간 옥분이 단순한 민원쟁이 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그 장면까지 오는 데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됐는지가 그 순간에 드러난다. 관객이 이미 옥분을 좋아하게 된 상태에서 그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적 전략이다. 그 전략이 이 영화가 상업 영화이면서도 역사적 무게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는 이유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위안부 영화라는 것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이 다른 경험을 만든다. 모르고 가는 것이 이 영화가 설계한 방식에 가장 가깝다. 이제훈이 연기하는 민재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딱딱하고 원칙적인 공무원이 옥분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다. 그 변화가 관객의 변화와 함께 온다. 민재가 옥분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지막에 옥분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 그 차이가 이 영화의 핵심 감정 중 하나다. 이제훈의 절제된 연기가 나문희의 폭발적인 연기와 균형을 이루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앙상블을 완성한다.
나문희가 이 영화에서 하는 것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의 영화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다. 연기 생활 56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그 수상이 단순한 연기상이 아니라 이 배우가 평생 쌓아온 것이 이 역할에서 폭발한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옥분이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여러 얼굴을 가진다. 웃기는 할머니,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 있는 상처 입은 생존자. 나문희가 이 층위들을 모두 소화하는 방식이 이 영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코미디 연기와 감정 연기가 같은 인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이 배우의 가장 중요한 성취다. 미국 의회 증언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나문희가 영어로 증언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다. 실제 의회 건물에서 촬영된 그 장면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그 지움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만든다. 개인적으로 나문희가 수상 소감에서 극 중 대사를 즉석에서 영어로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 배우가 이 역할을 얼마나 깊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그 일화가 말한다. 이 영화가 나문희라는 배우가 56년 경력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꺼내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가 있다. 그 평가가 과하지 않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오랫동안 조연으로만 존재했던 배우가 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서면서 이렇게 빛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서도 의미 있는 이유다. 나문희라는 배우의 재발견이 이 영화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재발견이 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배우와 역할이 이렇게 완벽하게 맞는 경우가 드물다. 나문희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코미디 연기와 감정 연기를 자유롭게 오가는 이 배우의 능력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쓰였다. 56년 경력이 이 한 역할에 녹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위안부 영화라고 밝히지 않는다. 코미디로 시작해서 관객이 옥분이라는 인물을 좋아하게 만든 다음에, 그 인물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 순서가 이 영화의 핵심 전략이다. 이미 옥분을 좋아하게 된 관객이 옥분의 역사를 알게 될 때 그 무게가 다르다. 역사를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알게 하는 것,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법이다.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실제로 증언한 이용수·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보는 경험에 다른 차원을 더한다. 영화 속 옥분의 증언이 실제 역사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더 무거워진다. 실제 의회 건물에서 촬영된 이 장면이 현실감을 더하는 방식, 그 선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프로덕션 결정이었을 것이다. 허구와 현실이 이 장면에서 완전히 겹쳐진다. 옥분이 곧 실제 할머니들이 된다. 상업 영화의 형식으로 역사를 담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328만 명의 관객에게 이 역사를 전달했다는 것이 그 선택의 결과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역사를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교육이 아닌 인간 이야기로 이 무게를 전달하는 것, 아이 캔 스피크가 그 방법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관객에게 닿았다. 평점 9.24라는 수치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닿았는지를 말한다. 역사를 교육하려 하지 않고 사람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역사를 담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이 이 영화 전체를 담는다.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 말하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다. 말하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일이라는 것, 이 영화가 그것을 보여준다. 옥분 할머니가 영어로 말하는 그 순간, 이 영화의 제목이 완성된다. 아이 캔 스피크. 말할 수 있다. 그 말하기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하기가 얼마나 긴 시간과 용기를 필요로 했는지를 이 영화가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