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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 이름과 노동이 말하는 것

by 멋진엄마 2026. 5. 2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3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과 2002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으로, 어린 소녀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모험이 아닌 이유는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과 노동이라는 주제 안에 현대 사회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깊은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빼앗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노동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 연결 안에 있다. 어린 시절 봤던 기억이 있다면 지금 다시 보길 권한다. 아이로 볼 때와 어른으로 볼 때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이 차이가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고, 지금 이 글에서 그 이유를 하나씩 풀어본다. 노동과 이름이라는 두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을 따라가 보겠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될 때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가 완성된다.

센과 치히로,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 된다. 이 설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다. 유바바는 이름을 가져감으로써 그 사람을 지배한다. 이름이 없어지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되고, 결국 이 세계 안에 완전히 종속된다. 치히로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 기억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영화 전체의 투쟁이다. 이름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는 것, 이름이 곧 정체성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판타지 세계의 규칙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유효한 이야기라는 것을 어른 관객은 본능적으로 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 설정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가는지를 이 영화는 은유적으로 담는다. 직장에서 직함으로 불리고, 역할로 정의되고, 자신의 본래 이름이 점점 희미해지는 경험. 치히로가 센이 되는 것이 그 경험의 판타지적 표현이다. 하쿠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고, 그 때문에 유바바에게 묶여 있다. 치히로가 하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되돌려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정교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관객에게는 흥미로운 판타지 규칙으로, 어른 관객에게는 정체성 상실에 대한 깊은 은유로 동시에 읽힌다. 그 이중성이 이 영화를 모든 연령대에서 다르게, 그러나 모두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유다. 어린이에게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모험의 규칙이고, 어른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이 삶의 규칙이다. 같은 이야기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깊이로 들어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지금도 새로 발견되는 이유다.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 본 사람에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보는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노동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유바바의 온천탕에서 일하게 된다. 여기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노동에 대한 시각이 드러난다. 치히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유바바에게 일을 달라고 스스로 청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환점이다. 치히로는 수동적으로 구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설정이 미야자키 감독이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노동은 착취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는 시각이다. 온천탕에서 치히로가 처음 맡은 일은 가장 힘들고 천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통해 치히로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능력을 키우고, 결국 이 세계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노동이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관계와 성장의 매개라는 것, 이 영화가 보여주는 노동의 의미다. 하지만 동시에 그 노동이 어떤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을 키울 수도, 소모할 수도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치히로가 살아남은 것은 노동 자체 덕분이 아니라, 노동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노동의 어두운 면도 함께 담는다. 온천탕의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잊은 채 일만 한다. 유바바가 만들어놓은 구조 안에서 일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구조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영화가 현실 사회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의 규칙에 적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래 무엇을 원했는지를 잊게 된다는 것. 그 경험이 유바바의 온천탕이라는 판타지 공간 안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담겨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깊이다.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아이들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이 장면을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길 권한다. 온천탕 안의 노동자들이 어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들이 왜 그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가, 치히로가 왜 혼자 달라 보이는지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게 될 때 이 영화가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가 보인다. 치히로가 특별한 이유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다. 그 태도가 이 영화에서 노동의 의미를 완성한다.

지금 우리 사회와 닿아있는 방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001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읽히는 이유가 있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 노동에 의해 정체성이 흐려진다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더 보편적인 경험이 됐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직함으로, SNS에서는 아이디로, 플랫폼 안에서는 숫자로 존재하는 시대. 치히로가 센이 되는 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영화를 당시 일본 사회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분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열심히 일해도 앞이 보이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소모되는 느낌. 그 감각이 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 감각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전 세계에서 공감을 얻은 것이다. 치히로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흥미롭다. 규칙을 어기거나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주변 사람들과 진심으로 관계를 맺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 방식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눈에 띄게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이 영화는 조용하게 다른 방향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해결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영화는 치히로를 통해 조용하게 말한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 대신 자신의 이름을,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면 된다. 그 기억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2001년에 만들어진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 보면 오히려 더 필요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메시지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 그게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강한 저항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판타지의 언어로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판타지 안에 이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어른들에게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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