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많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더 리더. 이미 수많은 걸작들이 그 역사를 스크린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2015년 헝가리에서 나온 데뷔작 사울의 아들은 이 계보 안에서 완전히 다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연달아 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답했습니다. 보여주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선택한 언어였습니다.
사울의 아들이 홀로코스트를 다룬 혁신적인 방식
사울의 아들의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사울의 얼굴과 등에 밀착됩니다. 4:3 화면 비율에 얕은 심도로 설계된 이 카메라는 사울의 시야 너머 배경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합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 시신들, 수용소의 참상은 화면 가장자리에 흐릿하게 존재할 뿐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이전의 홀로코스트 영화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기존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그 참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전달했었다면, 사울의 아들은 반대로 접근합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상상이 채워지고, 그 상상이 직접 보는 것보다 더 깊은 공포와 충격을 만들어냅니다.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소리들, 화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감각을 자극합니다. 감독 라슬로 네메시는 이 연출 방식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참상을 스펙터클로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처음엔 화면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뭔가 더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느낌이 불편했는데, 그 불편함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화면 밖의 것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 영화가 왜 이 방식을 택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보여주는 것보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무거운 무게를 지닌다는 걸, 이 영화로 처음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아들의 시신을 묻으려는 한 사람의 집착이 던지는 질문
영화의 서사는 단순합니다. 존더코만도, 즉 나치에 의해 동족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강제당한 유대인 수용소 대원인 사울은 가스실에서 죽은 한 소년의 시신을 자신의 아들이라 믿습니다. 그는 그 소년을 유대 율법에 따라 제대로 매장하기 위해 랍비를 찾아 헤매고, 이 집착이 영화 전체를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이 설정은 여러 층위의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첫 번째는 생존의 윤리입니다. 존더코만도는 살아남기 위해 동족의 죽음에 협조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사울이 아들의 시신에 집착하는 행위는 그 상황 안에서 마지막으로 붙들 수 있는 인간적 행위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 영화는 묻습니다. 두 번째는 소년이 정말 사울의 아들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는 이것을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낯선 소년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착은 더욱 인간적입니다. 무의미한 죽음들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단 하나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이 정말 사울의 아들인지 끝내 알 수 없다는 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울에게 그 소년이 아들이라는 사실, 그 믿음 자체가 그를 인간으로 붙들어두는 유일한 끈이었을 테니까요. 그 끈이 없었다면 사울은 훨씬 전에 무너졌을 겁니다.
데뷔작으로 이 주제를 택한 감독의 배경과 선택
라슬로 네메시는 사울의 아들이 첫 장편입니다. 데뷔작으로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네메시는 헝가리 출신으로, 헝가리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협력해 자국 유대인을 대량으로 아우슈비츠에 이송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적 배경이 네메시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존더코만도의 증언록과 기록물을 수년간 연구했고, 실제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습니다. 주연 배우 게자 뢰리히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시인 출신으로, 그의 절제된 표정 연기가 사울이라는 인물에 묘한 밀도를 부여합니다. 네메시는 타르 벨라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영화를 배웠는데, 타르 벨라 특유의 롱테이크와 인내심 있는 카메라 운용이 사울의 아들에서도 변형된 방식으로 느껴집니다. 다만 타르 벨라가 거리를 유지하는 카메라였다면, 네메시는 반대로 밀착하는 카메라를 선택했습니다. 네메시가 데뷔작으로 이 소재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처음엔 대단하다기보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미 이 주제를 다룬 걸작들이 너무 많은데, 그 안에서 새로운 걸 말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전 영화들이 말한 것과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같은 역사를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한 영화였고, 그 언어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게 칸과 오스카가 동시에 인정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