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는 1995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 은곰상을 받은 작품으로, 에단 호크와 쥘리 델피가 연기한 제시와 셀린의 빈에서의 하룻밤을 담은 영화입니다. 비포 선라이즈 실화로 에단 호크가 아닌 링클레이터 감독의 실제 경험이 이 영화가 된 배경, 에이미 레르하우프트라는 실존 인물이 이 영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촬영 시작 몇 주 전에 벌어진 비극이 트릴로지 전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 영화의 실화 배경이 얼마나 슬프고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분석합니다. 제목에 에단 호크를 넣었지만 실제 이 영화의 실화는 링클레이터 감독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에단 호크는 이 이야기를 연기한 사람이고, 실제로 그 하룻밤을 산 사람은 링클레이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룻밤의 상대였던 에이미 레르하우프트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포 선라이즈 실화, 링클레이터의 하룻밤이 영화가 된 방법
1989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가족을 만나러 필라델피아에 들렀다가 장난감 가게에서 에이미 레르하우프트라는 여성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밤새 도시를 걸으며 예술과 철학과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링클레이터는 인터뷰에서 그 경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미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에이미에게 이 순간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자 에이미는 무슨 이걸 말이냐고 반문했고, 링클레이터는 그냥 이것, 지금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감각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만남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하고 장거리 연애를 시도했지만 결국 관계가 흐지부지됐습니다. 링클레이터는 에이미와의 연락이 끊긴 뒤에도 그 하룻밤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6년 뒤 비포 선라이즈가 완성됐습니다. 제시와 셀린이 빈에서 보내는 하룻밤이라는 뼈대는 링클레이터와 에이미의 필라델피아 하룻밤에서 왔습니다. 링클레이터가 직접 초안을 쓰고 에단 호크와 쥘리 델피가 공동으로 대사를 발전시켰는데, 델피는 나중에 링클레이터의 초안이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두 배우가 참여하면서 영화의 로맨스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에단 호크를 처음 만났을 때 링클레이터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가, 뉴욕에서 연극을 하는 호크를 보고 마음을 바꿔 캐스팅했습니다. 제니퍼 애니스턴과 기네스 팰트로가 셀린 역을 오디션 봤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탄생 과정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제시가 셀린에게 이 순간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다르게 들립니다. 링클레이터 자신이 에이미에게 했던 말을 제시의 입을 빌려 다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전적 경험을 픽션 안에 이렇게 정교하게 녹여내는 방식이 링클레이터라는 감독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미 레르하우프트, 영화를 보지 못한 뮤즈
비포 선라이즈의 실화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에이미 레르하우프트의 이야기입니다. 링클레이터와 헤어진 뒤 연락이 끊긴 에이미는 1994년 5월 9일 오토바이 사고로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포 선라이즈 촬영이 시작되기 불과 몇 주 전이었습니다. 링클레이터는 이 사실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에이미가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혹시 시사회에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에이미의 친구 중 한 명이 비포 선라이즈의 내용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같다는 걸 알아채고 링클레이터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2010년이었습니다. 링클레이터가 에이미의 죽음을 안 것은 그때였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1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링클레이터는 누가 서로의 삶에 어떻게 파문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이 비포 트릴로지 전체의 주제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비포 미드나잇의 마지막 크레디트에는 에이미 레르하우프트에 대한 헌정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만드는 내내 링클레이터는 에이미가 살아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트릴로지를 썼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비포 선셋에서 제시가 책 출판 홍보를 위해 파리에 있다가 셀린과 재회하는 설정이 다르게 읽힙니다. 제시가 책을 쓴 것도, 셀린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서점에 나타난 것도 모두 링클레이터가 에이미가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였을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면 이 영화들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
실화가 트릴로지 전체에 미친 영향
비포 선라이즈의 실화 배경을 알면 트릴로지 전체가 다르게 읽힙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와 셀린은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고 6개월 후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실제 링클레이터와 에이미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장거리 연애를 시도했지만 결국 관계가 끊겼습니다. 영화는 실제보다 더 로맨틱한 방식을 선택한 셈입니다. 비포 선셋에서 제시가 파리의 서점에서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설정은 링클레이터가 영화를 통해 에이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욕망의 투영으로 읽힙니다. 영화 속에서 셀린은 제시의 책을 읽고 그게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아채고 서점에 나타납니다. 현실에서 에이미의 친구가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링클레이터에게 편지를 보낸 것과 구조가 닮았습니다. 트릴로지를 마무리한 비포 미드나잇은 제시와 셀린의 관계가 중년의 현실 안에서 얼마나 힘겨운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에 에이미 레르하우프트에 대한 헌정이 담긴 것은, 링클레이터가 20년에 걸친 트릴로지를 완성하면서 비로소 그 출발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비포 트릴로지를 보면서 이 영화들이 왜 이렇게 현실처럼 느껴지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실화를 알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링클레이터가 실제로 경험한 감각을 영화 안에 담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어떻게 포착할까라는 질문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고, 그 질문이 30년에 걸친 트릴로지로 이어졌습니다. 에이미 레르하우프트가 없었다면 이 영화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링클레이터의 말이, 실화를 알고 나면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