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는 2019년 개봉한 공포 영화로,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고 마틴 스콜세지가 극찬한 작품이다. 가족을 모두 잃은 대니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 함께 스웨덴의 작은 마을 호르가에서 열리는 90년에 한 번 열리는 하지 축제에 참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플로렌스 퓨가 주인공 대니를 연기하며, 이 역할로 고섬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가 한낮의 밝은 빛 아래에서 공포를 만드는 방식, 포크 호러의 탈을 쓴 이별 영화라는 아리 에스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공포 영화이지만 보고 나서 슬픔과 해방감이 동시에 오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2019년 가장 독창적인 공포 영화로 꼽히는 이유가 그 이상함에 있다.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촬영상 후보에도 오른 이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도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밝고 아름다운 화면이 그 안의 내용과 만들어내는 대비, 그 대비가 이 영화를 잊기 어렵게 만든다.
미드소마, 빛 속의 공포
미드소마에서 가장 독창적인 선택은 공포를 어둠 속이 아닌 빛 속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는 보통 어둠을 사용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드소마는 반대다. 스웨덴의 백야 속에서, 꽃이 가득한 마을에서, 모든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 공포가 만들어진다. 그 역전이 이 영화를 이전 공포 영화와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보이는데 더 무서운 것, 아름다운 것이 공포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역전이 이 영화를 경험으로 만든다.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우면서 무서운 것, 그 두 감각이 동시에 온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특성이다. 호르가 마을의 의식들이 처음에는 기이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기이함이 점점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할 때가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대니도, 관객도 그 마을의 논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구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이 스웨덴의 민속 문화와 토속 신앙을 수년간 연구해서 만든 배경이 이 영화에 설득력을 준다. 그 설득력이 이 영화를 단순한 슬래셔 영화와 다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노인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초반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나머지를 모두 예고한다. 이 공동체가 무엇을 믿는지, 그 믿음이 어디까지 가는지가 그 장면 하나에 담겨 있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낮의 빛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시각적 일관성이다. 공포가 어둠이 아닌 빛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 미드소마가 그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것이 동시에 무서울 수 있다는 것, 이 영화가 그 역설을 완성한다. 이 영화의 촬영을 담당한 파버 구스타프손의 카메라가 이 밝음을 어떻게 공포로 만드는지가 이 영화의 시각적 핵심이다. 꽃이 가득하고 빛이 넘치는 화면이 동시에 가장 무서운 화면이 되는 방식, 그게 미드소마를 다른 공포 영화와 구분하는 것이다. 공포 영화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이 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미드소마의 촬영은 공포 영화의 미학을 새로 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크 호러의 탈을 쓴 이별 영화
아리 에스터 감독은 미드소마가 포크 호러의 탈을 쓴 이별 영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가 이 영화의 진짜 중심이다. 크리스티안은 대니와 헤어지고 싶어 하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대니는 그 관계에 매달리면서 점점 소진된다. 호르가 마을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마을이 크리스티안의 배신을 끌어내고, 마을이 대니의 상처를 드러낸다. 그 과정이 이 영화의 공포보다 더 무거운 드라마다. 마을이 대니를 받아들이는 방식, 대니의 감정을 공동체가 함께 표현해 주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대니가 슬퍼하면 마을 여자들이 함께 울어준다. 대니의 감정이 혼자가 아니라 집단의 것이 된다. 그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대니가 이 공동체에 서서히 흡수되어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감독 본인의 이별 경험이 이 영화에 반영됐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감정이 왜 이렇게 정확한지를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대니가 미드소마의 여왕으로 선택되는 장면이 가장 기묘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이 공포인지 해방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순간이다. 이 영화에서 공동체가 대니의 감정을 나눠 갖는 장면들이 가장 기이하면서 동시에 가장 따뜻한 장면들이다. 자신의 슬픔을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그게 대니에게 이 마을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 이해가 이 영화를 단순한 컬트 호러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이별 영화로서의 미드소마, 즉 관계의 끝을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영화가 있었나 싶다. 이별의 고통이 이렇게 시각화될 수 있다는 것, 아리 에스터만이 이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을 이 영화가 완성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별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느껴진다. 미드소마가 이별을 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아리 에스터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 선택이 이 영화를 잊기 어렵게 만든다. 이별이 공포가 될 때, 그 공포가 이 영화다.
플로렌스 퓨가 이 영화에서 하는 것
미드소마에서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니는 영화 내내 극한의 감정 상태를 오간다. 가족을 잃은 슬픔, 관계에서 느끼는 소외, 낯선 공간에서의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기묘한 카타르시스. 이 모든 것을 플로렌스 퓨가 담아낸다. 과장 없이, 하지만 최대한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의 표정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해방인지 광기인지, 승리인지 비극인지.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를 완성한다. 플로렌스 퓨가 이 역할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다. 미드소마가 그 출발점이 됐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에서 토니 콜렛이 했던 것을 이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가 한다. 극한의 감정을 완전히 흡수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 이 두 배우가 이 감독의 영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 같다. 아리 에스터 감독이 배우로부터 이 정도를 끌어내는 것이 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플로렌스 퓨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은 이 배우가 커리어 초반에 이 정도였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깊다. 미드소마를 보고 나면 이 배우의 이후 작품들이 다르게 보인다. 개인적으로 미드소마는 공포 영화지만 보고 나서 슬픔과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 이상함이 이 영화의 목적이고, 그 목적이 달성됐다는 것을 보고 나서 알게 된다. 미드소마를 보고 나면 아리 에스터라는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유전과 미드소마를 연달아 만든 감독이 다음에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감독이 공포 장르를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를 이 영화가 보여준다. 미드소마는 모든 사람에게 맞는 영화가 아니다. 불편하고 충격적이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설명하기 어려움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좋은 공포 영화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미드소마가 그 일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한다. 이 영화가 현대 공포 영화의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 봉준호와 스콜세지가 극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