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201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고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입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음악 없는 장면이 더 강렬한 이유, 레일라 딘과 비버 앤 크라우스의 음악이 쓰인 방식, 그리고 침묵과 음악이 교차하는 방식이 리 챈들러라는 인물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이 왜 단순한 배경 음악 이상의 역할을 하는지 분석합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감정적인 장면에 음악을 깝니다.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 긴장되는 장면에 긴장감을 높이는 음악. 그런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가장 감정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오히려 음악을 빼버립니다. 그 선택이 이 영화를 다른 슬픔 영화들과 구분 짓는 핵심입니다. 왜 음악이 없을 때 더 많은 것이 전달되는지, 그리고 로너건이 음악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구체적인 장면들을 통해 살펴봅니다.
음악 없는 장면이 더 강렬한 이유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리가 경찰서에서 자신이 한 일을 진술하고 나서 갑자기 경찰관의 총을 잡으려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 음악이 없습니다. 형광등 소리, 발소리, 그리고 침묵. 그것뿐입니다. 음악이 없기 때문에 관객은 이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안내받지 못합니다. 슬퍼해야 하는지, 충격받아야 하는지, 이해해야 하는지. 영화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공백을 관객 스스로가 채워야 합니다. 이 구조가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작동합니다. 보통 영화에서 음악은 감독이 관객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도구입니다. 슬픈 음악이 깔리면 관객은 슬퍼야 한다는 신호를 받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 신호를 의도적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로너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슬픔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을 빼는 것은 그 의도를 구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음악이 없는 장면에서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가 더 날것으로 전달됩니다. 배우의 표정, 호흡, 손의 움직임이 어떤 장치도 없이 화면 위에 그대로 놓입니다. 음악이 있었다면 반쯤은 음악이 해줬을 감정 전달을 배우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 무방비 상태가 이 영화에서 연기가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경찰서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음악이 없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서 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걸 알았는데, 그때 이 영화가 얼마나 영리하게 설계됐는지를 실감했습니다. 음악이 없어서 더 기억에 남는 역설, 그게 이 영화의 사운드 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음악이 쓰일 때의 정확한 타이밍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음악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레일라 딘이 편곡한 헨델과 알비노니의 바로크 음악, 그리고 비버 앤 크라우스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영화 곳곳에 배치됩니다. 그런데 이 음악이 쓰이는 타이밍이 매우 구체적으로 계산돼 있습니다. 음악은 주로 과거 회상 장면에 등장합니다. 리가 아이들과 함께 살던 시절, 아내와 웃으며 이야기하던 시절, 아직 모든 것이 망가지기 전의 시간들. 이 과거 장면들에 음악이 깔리면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비가 선명해집니다. 현재의 리는 음악이 없는 세계에 살고, 과거의 리는 음악이 있는 세계에 살았습니다. 이 대비가 말로 설명되지 않고 사운드만으로 전달됩니다. 헨델의 메시아 중 일부 악장이 쓰이는 장면도 의도적입니다. 종교적 맥락을 가진 음악이 구원과 거리가 먼 리의 상황과 교차하면서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음악이 위로가 아니라 거리감을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음악 사용이 일반적인 영화와 다릅니다. 과거 장면에 음악이 있고 현재 장면에 음악이 없다는 구조를 알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영화 전체의 리듬이 다르게 들렸습니다. 음악이 나오면 이게 회상 장면이라는 걸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로너건이 음악을 내러티브 도구로 사용한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섬세하게 설계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과 음악이 리라는 인물을 완성하는 방식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침묵과 음악이 교차하는 패턴은 리 챈들러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리는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반응을 최소화하며, 세상과의 연결을 스스로 차단합니다. 이 인물의 내면 상태가 음악 없는 사운드스케이프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리에게는 현재가 음악 없는 세계입니다. 그가 음악이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도 현재 리의 장면에서는 음악을 돌려놓지 않습니다. 이 일관성이 사운드와 인물이 하나로 통합되는 방식입니다. 전처 랜디와 거리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을 담은 순간입니다. 랜디가 용서한다는 말을 하려 하고, 리가 그 말을 들을 수 없어서 무너지려 하는 그 장면에도 음악이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들, 숨소리, 주변의 바람 소리. 그것뿐입니다. 음악이 있었다면 이 장면은 감동적인 화해 씬처럼 편집됐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 없기 때문에 이 장면은 그냥 두 사람이 서 있는 장면으로 남습니다. 해소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채로. 이 영화에서 음악이 없다는 게 처음엔 불편했습니다. 뭔가 채워져야 할 것 같은 공간이 자꾸 비어 있으니까요. 근데 그 불편함이 사실 리가 매일 느끼는 감각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음악이 없어서 불편한 관객과, 음악이 없는 세계에서 사는 리가 같은 감각 안에 있었습니다. 로너건이 그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효과가 이 영화를 단순히 보는 영화가 아닌 경험하는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침묵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영화를 또 본 기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