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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새크라멘토가 영화에서 하는 역할

by 멋진엄마 2026. 4. 30.

레이디 버드 포스터
레이디 버드 포스터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는 2017년 개봉해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여성 감독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낸 작품입니다. 레이디 버드에서 새크라멘토라는 배경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 주인공 크리스틴이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떠나고 싶어 하는 역설, 그리고 뉴욕을 동경하는 십 대 소녀의 시선이 새크라멘토를 어떻게 담아내는지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 영화에서 도시 배경이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크리스틴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합니다. 거윅 감독이 실제로 자란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 서부의 평범한 중소도시, 뉴욕이나 LA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충분히 주목받지도 못하는 곳. 크리스틴이 그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왜 떠나려 하고, 떠난 뒤 무엇을 깨닫는지가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의 핵심 서사입니다. 배경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이 영화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드뭅니다.

새크라멘토가 레이디 버드에서 하는 역할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주도이지만 LA나 샌프란시스코에 비해 존재감이 약한 도시입니다. 크리스틴이 이 도시를 답답하게 느끼는 건 도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이 도시가 주는 감각의 문제입니다. 모든 게 익숙하고,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이고, 어디를 가도 새로울 것이 없는 그 감각. 크리스틴이 뉴욕을 동경하는 건 뉴욕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거윅 감독은 이 도시를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습니다. 새크라멘토의 평범한 교외 풍경, 가톨릭 학교, 중산층과 빈곤층이 뒤섞인 동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십 대들. 이 풍경들이 크리스틴의 삶의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거윅이 실제로 이 도시에서 자랐다는 게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숨 쉬어본 사람의 시선으로 담겼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크리스틴이 수녀 선생님에게 왜 새크라멘토가 싫냐고 반문을 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도시의 나무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크리스틴은 그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같은 도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는 두 사람이 그 짧은 대화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소가 아름다운지 아닌지는 그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위치에서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그 위치는 나이와 경험에 따라 변한다는 것. 크리스틴이 나중에 그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건 바로 그 변화의 결과입니다. 새크라멘토를 떠나봐야 새크라멘토가 보인다는 역설이 이 영화의 핵심이고, 그 역설을 배경으로 구현한 방식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새크라멘토라는 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근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도시가 어떤 느낌인지가 전달됐고, 이상하게 익숙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크라멘토가 아니라 제가 자란 동네를 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곳인데 그게 내 삶의 전부였던 시절. 거윅이 새크라멘토를 담은 방식이 그 보편적인 감각을 건드렸기 때문에,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살았던 사람이든 이 영화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떠나고 싶은 도시를 사랑하는 역설

레이디 버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긴장은 크리스틴이 새크라멘토를 싫어하면서도 그 도시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옵니다. 크리스틴이 동경하는 뉴욕 이스트 코스트 문화는 영화 안에서 실제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크리스틴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미지입니다. 반면 새크라멘토는 구체적입니다. 교회 주차장,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거리, 친구 줄리와 함께 가는 마트, 댄스 파티가 열리는 체육관. 이 공간들이 크리스틴의 실제 삶입니다. 거윅은 이 공간들을 매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습니다. 낡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입니다. 크리스틴이 엄마와 차 안에서 싸우다가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새크라멘토의 평범한 도로 위에서 일어납니다. 그 평범함이 이 장면을 더 생생하게 만듭니다. 영화 후반부, 뉴욕에 도착한 크리스틴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레이디 버드라는 스스로 붙인 이름을 버리고 크리스틴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새크라멘토를 떠나서야 새크라멘토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의 완성입니다. 이 역설이 이 영화를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닌 무언가로 만듭니다. 떠나고 싶었던 곳이 사실은 자신을 만든 곳이었다는 걸 깨닫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새크라멘토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윅이 뉴욕이나 LA를 배경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거라는 게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평범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가능했습니다. 크리스틴이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웃음이 나왔는데 동시에 그 마음이 이해됐습니다. 엄마와의 싸움이 너무 답답해서 차에서 내려버리고 싶다는 충동, 그걸 실제로 해버리는 크리스틴이 황당하면서도 부러웠습니다. 그 장면이 새크라멘토의 아무것도 아닌 도로 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더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특별한 배경이었다면 오히려 그 장면이 희화화됐을 겁니다.

거윅의 시선이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

그레타 거윅은 실제로 새크라멘토에서 자랐습니다. 레이디 버드는 자전적 요소가 강한 영화이고, 그 자전성이 도시를 담는 방식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거윅은 새크라멘토를 기억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이 도시를 담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의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시선입니다. 영화 속 집들, 학교, 동네 풍경이 로케이션 촬영으로 찍혔다는 건 거윅이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현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그 정확함이 화면의 진짜 같은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거윅이 이 영화에서 새크라멘토를 담는 방식은 알폰소 쿠아론이 로마에서 멕시코시티를 담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자란 도시를 영화 안에 복원하려는 충동, 그리고 그 복원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그 도시가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새크라멘토 시내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는 장면, 학교 복도, 친구의 부유한 집과 크리스틴의 낡은 집이 교차하는 방식. 이 모든 장면들이 거윅의 기억에서 온 것이라는 걸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다른 감각으로 읽힙니다. 어떤 도시가 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도시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영화가 되는 과정. 레이디 버드는 그 과정을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새크라멘토를 모르는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자란 도시를 떠올리게 된다면, 그게 이 영화가 만들어낸 가장 큰 성취입니다. 로마와 레이디 버드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두 영화 모두 자신이 자란 도시를 향한 일종의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쿠아론은 흑백으로, 거윅은 컬러로 담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의 방향은 같습니다. 내가 나온 곳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화면 위에 올려두는 것. 그게 가능한 감독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하면, 거윅이 데뷔작에서 이미 그 수준에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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