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더 페이버릿, 총애를 향한 전쟁

by 멋진엄마 2026. 6. 25.

더 페이버릿 포스터
더 페이버릿 포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은 2018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18세기 영국 앤 여왕의 총애를 두고 오랜 친구 사라와 신참 하녀 애비게일이 벌이는 권력 싸움을 담는다. 올리비아 콜먼, 레이철 와이즈, 엠마 스톤 세 배우의 앙상블이 이 영화의 전부다.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로 알려진 란티모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시대극과 블랙코미디를 어떻게 결합했는지, 앤 여왕이라는 인물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란티모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 접근성이 이 영화의 깊이를 전혀 희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더 넓은 관객과 만났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의미다. 전작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독의 세계로 입문한 작품이다.

더 페이버릿,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더 페이버릿에서 권력은 여왕이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사한다. 앤 여왕은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그녀의 오랜 친구 사라다. 사라는 여왕의 감정을 조종하고,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남편 말보로 공작의 전쟁 정책을 관철시킨다. 그 관계가 이 영화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층위다. 애비게일이 등장하면서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애비게일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 아무것도 없음이 오히려 그녀에게 자유를 준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과감하다. 애비게일이 여왕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다. 친절함, 약초, 거짓 눈물. 그 모든 것이 계산이지만 그 계산이 보이지 않게 포장된다. 란티모스 감독은 이 권력 싸움을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담는다. 웃기면서 동시에 소름 돋는 그 감각이 이 영화의 특별한 맛이다. 어안 렌즈로 촬영된 화면이 이 왜곡된 권력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 렌즈가 만드는 이미지가 이 영화의 미학적 정체성이기도 하다. 화려한 18세기 영국 궁정의 배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권력 싸움이 만드는 대비, 그 대비가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를 완성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애비게일이 처음 사라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고 교묘한 행동들이 쌓이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가는 과정, 그 과정이 이 영화의 드라마다. 권력이 손에서 손으로 이동할 때 그 이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영화가 그것을 가장 정교하게 보여준다. 엠마 스톤이 이 역할에서 보여주는 것이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애비게일이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축하받을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불편하고 가장 탁월한 지점이다. 세 배우가 각자의 욕망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이 영화가 만드는 삼각형이 완성된다. 그 삼각형이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유지된다. 그리고 그 삼각형이 마지막에 어떻게 변형되는지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결말이다. 삼각형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방식으로 이 영화가 끝난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열린 결말이 만드는 긴장이다.

올리비아 콜먼의 앤 여왕

더 페이버릿에서 앤 여왕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그 권력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수십 명의 아이를 잃었고, 그 상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히스테릭하고 변덕스럽고 의존적인 그녀가 처음에는 코미디의 소재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히스테리 아래에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올리비아 콜먼의 연기가 이 인물을 코미디와 비극 사이 어딘가에 정확하게 세워둔다. 웃기면서 동시에 슬픈 그 표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앤 여왕이 토끼들에게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붙여 키운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가장 무거운 순간을 만든다. 그 토끼들이 이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와 연결될 때, 이 영화 전체가 다른 감각으로 읽힌다. 베니스와 아카데미가 모두 올리비아 콜먼에게 상을 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인물을 이렇게 다층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앤 여왕이 처음으로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 무언가가 변한다. 그 변화가 이 영화의 진짜 중심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동시에 가장 취약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앤 여왕이 그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올리비아 콜먼이 이 취약함과 권위를 동시에 담는 방식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이 역할로 그녀가 받은 두 개의 상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앤 여왕이 처음에는 코미디로 읽히다가 영화가 끝날 즈음 비극으로 읽히게 되는 그 전환이 이 배우의 연기 없이는 불가능했다. 같은 인물을 두 번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 그게 올리비아 콜먼이 이 영화에서 하는 일이다. 그 경험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다. 앤 여왕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완전히 새롭게 발명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 인물이 이렇게 생생하고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나는 경우가 드물다. 앤 여왕을 이렇게 기억하게 된 것은 올리비아 콜먼 덕분이고, 그 기억이 이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는다. 앤 여왕의 토끼들이 이 영화에서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토끼들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앤 여왕의 내면 전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영화가 얼마나 깊이 설계됐는지를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 말하는 것

더 페이버릿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 애비게일이 총애를 차지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그 마지막에 드러난다. 여왕의 총애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구속이라는 것, 원하던 것을 얻은 후에 오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 토끼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이 결말이 만들어내는 감각이 섬뜩하면서 동시에 슬프다. 란티모스 감독의 어안 렌즈 촬영이 이 영화 전체에서 인상적인데, 그 렌즈가 권력이 만드는 왜곡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권력 가까이 있을수록 세상이 더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카메라가 보여준다. 세 배우 모두 이 영화에서 서로 다른 욕망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사라는 직접적이고 솔직하며, 그 솔직함이 결국 그녀의 약점이 된다. 애비게일은 순응하면서 계산하고, 그 계산이 드러나지 않도록 포장한다. 앤은 상처받은 채로 원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 원함이 조종당하기 쉽다는 것을 모른다. 이 세 가지 욕망이 충돌할 때 이 영화가 완성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시대극의 형식을 빌렸지만 지금 이 시대의 권력 관계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총애를 향한 싸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식, 권력의 공허함. 이 모든 것이 18세기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이야기다. 더 페이버릿이 이 오래된 이야기를 이렇게 신선하게 만든 것이 란티모스 감독의 힘이다. 블랙코미디라는 외피 안에 권력의 본질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가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기억하게 되는 이유다. 시대극이지만 낡지 않았고, 코미디이지만 가볍지 않고, 치정극이지만 그 이상이다. 그 세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영화가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하면 더 페이버릿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게 된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볼 것을 권한다. 란티모스의 다른 작품이 어렵게 느껴진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더 친절하게 열려있다. 그리고 그 친절함이 깊이를 전혀 희생하지 않는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