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는 2012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과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감독이 12년간 구상했던 라이프워크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영화다.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방황하는 프레디 퀠과 사이비 종교 지도자 랭커스터 도드의 관계를 담는다.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두 인물을 연기하며, 에이미 아담스가 도드의 아내 페기를 연기한다. 세 배우 모두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가 프레디와 도드의 관계를 어떻게 그리는지, 누가 진짜 마스터인지, 그리고 이 영화가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이동진 평론가가 10점 만점을 준 영화이고,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함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이 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것을 보면 알게 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야심 찬 작품이다. 그 야심이 화면 안에서 느껴지는 영화, 더 마스터가 그런 작품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경험이 오래간다.
더 마스터, 두 인물이 만드는 것
더 마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디와 도드 사이에 흐르는 것이다. 프레디는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PTSD와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진 사람이다.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런 프레디가 도드를 만난다. 도드는 이른바 더 코즈라는 사이비 종교적 운동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그는 프레디에게 과거 생의 기억을 탐구하는 처리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도드가 프레디를 이끄는 것인지, 아니면 프레디가 도드에게 필요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도드는 자신의 신봉자들 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프레디 앞에서는 다르다. 프레디는 도드를 추종하지 않는다. 믿지도 않는다. 그런데 도드는 그 프레디를 가까이 둔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프레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설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도드가 프레디에게 처리 과정을 진행하는 장면이 가장 강렬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끝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을 담는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지, 누가 누구에게 더 끌리는지가 그 장면에서 보인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다.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아니라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기 자체가 이 영화를 말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이 두 배우를 어떻게 화면에 담는지가 이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하는 그 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대화 없이도 모든 것이 전달되는 그 방식이 이 영화가 영화라는 매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65mm 필름으로 찍힌 화면의 질감이 이 장면들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 질감이 이 영화의 시대와 감정을 동시에 담는다. 미국 전역에 단 세 대밖에 없는 카메라로 찍었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시모어 호프먼
더 마스터가 이 수준의 영화가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두 배우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프레디는 이 배우 커리어에서 가장 극단적인 신체 연기를 보여주는 역할이다. 허리를 구부린 채 걷고, 눈을 찡그리고, 몸 전체로 내면의 혼란을 표현한다. 프레디의 상당 부분이 즉흥 연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호아킨 피닉스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그냥 놔두는 방식으로 찍었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보인다. 그 에너지가 이 영화의 전기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연기하는 도드는 그 전기에 대응하는 다른 전기다. 카리스마 있고 따뜻하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그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자신의 신앙이 진심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복잡함을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담아낸다. 두 배우가 같은 화면에 있을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에 10점 만점을 준 것이 이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에이미 아담스의 페기도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도드를 가장 완벽하게 믿고 통제하는 인물로서, 그녀의 존재가 도드와 프레디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물일 수 있다. 에이미 아담스가 이 역할에서 보여주는 것이 단순한 충실한 아내가 아니라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세 배우가 만드는 삼각관계가 이 영화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한다. 그 긴장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도 이 불편함을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마스터의 사운드트랙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가 만든 음악답게 불안하고 아름답다. 음악이 이 영화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만드는 방식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층위다. 조니 그린우드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와 만났을 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시작된 그 협업이 더 마스터에서 가장 깊어진다. 음악을 끄고 이 영화를 보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음악이 이 영화의 일부다.
이 영화가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
더 마스터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영화이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이다. 도드는 완전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 가장 불완전하다. 프레디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 솔직함이 역설적으로 더 정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 영화가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그냥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그 관계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서로에게 의존하는지를 드러낸다. 마스터와 신봉자, 치료자와 환자, 아버지와 아들. 이 영화에서 프레디와 도드는 이 모든 관계를 동시에 맺고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2년을 구상했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면 느껴진다. 모든 장면이 오래 생각하고 만든 것처럼 정교하다. 65mm 필름으로 촬영된 화면의 질감이 그 정교함을 더 강하게 만든다. 마스터와 신봉자, 치료자와 환자, 아버지와 아들. 이 영화에서 프레디와 도드는 이 모든 관계를 동시에 맺고 있다. 그 복잡함이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이 가장 오래 남는다. 프레디가 결국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도드가 프레디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가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 드러남이 이 영화가 처음부터 말하려 했던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에 알게 된다. 더 마스터는 어렵지만 그 어려움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영화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인간이 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지, 그 필요가 어디서 오는지, 그 필요가 충족될 수 있는지. 이 영화가 그 질문들을 끝까지 안고 간다. 그리고 그 답을 주지 않는다. 답 없이 질문만을 남기는 것이 이 영화의 방식이다. 그 방식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더 마스터는 한 번 보고 끝낼 수 없는 영화다.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삶의 어떤 국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 영화가 다르게 읽힌다. 그게 이 영화가 오래 살아있는 이유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12년을 구상했다는 것, 그 시간이 이 영화의 모든 프레임에 담겨 있다. 보고 나서 그 무게가 느껴진다면, 이 영화가 제대로 전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