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노 베어스는 2022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란 영화다. 이란 당국으로부터 출국금지와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파나히 감독이 직접 출연하면서, 국경 마을에서 원격으로 영화를 찍는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담는다. 영화 안의 영화, 감독의 실제 처지와 허구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이중 구조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만든 영화, 그게 노 베어스다. 이 영화가 이중 구조를 통해 무엇을 말하는지, 영화 제작 자체가 어떻게 저항의 행위가 되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한 자전적 기록을 넘어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2024년 첫 만점작이기도 한 이 영화가 왜 그 정도의 평가를 받는지,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영화가 이렇게 용감하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노 베어스가 그것을 보여준다. 파나히 감독의 이름이 왜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지를 이 영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영화를 통해 자유를 말하는 것이 이 감독의 방식이고, 노 베어스가 그 방식의 정점이다.
노 베어스, 영화 안의 영화가 만드는 것
노 베어스에서 자파르 파나히는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이끈다. 하나는 그가 원격으로 촬영하는 영화 속 이야기다. 터키에서 프랑스로 도피하려는 커플의 이야기로, 이 커플 중 여자는 이란 언론의 협박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한 실제 배우다. 다른 하나는 파나히 감독 자신이 머무는 이란 북서부 국경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을의 오랜 관습으로 사랑을 허락받지 못한 연인들이 함께 도피하려 하고, 마을 사람들은 파나히가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며 오해하고 압박한다. 이 두 이야기가 서로를 비추면서 이 영화는 자유와 구속에 대해 말한다. 국경을 넘으려는 영화 속 커플, 국경 마을에 갇혀있는 현실의 커플, 그리고 출국금지로 이란을 벗어날 수 없는 파나히 감독 자신. 세 겹의 구속이 이 영화 안에서 겹쳐진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이 이중 구조를 통해 만드는 것이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 안의 영화가 현실의 영화와 정확하게 메아리처럼 울린다. 픽션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그 경계에서 이 영화가 가장 강렬하게 말한다. 국경 마을의 커플이 겪는 관습의 구속, 영화 속 커플이 겪는 망명의 고통, 파나히 감독 자신이 겪는 국가의 제재. 이 세 겹이 이 영화 안에서 동시에 울린다. 그 울림이 이 영화를 경험하는 가장 특별한 감각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파나히 감독이 직접 등장하는 장면들이 가장 인상적이다. 영화를 찍는 감독이 자신도 영화가 되어버리는 그 순간,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지점이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이렇게 녹아드는 영화가 흔치 않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도 픽션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 사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많은 것을 말한다. 자파르 파나히가 이 형식을 선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된다. 제재를 받은 감독이 자신의 상황을 영화의 형식으로 전환한 것, 그 전환이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부분이다. 구속이 창의성을 만들어낸 역설적인 결과물, 그게 노 베어스다. 그리고 그 역설이 이 영화를 단순한 정치적 발언이 아닌 예술적 성취로 만든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영화가 흔치 않다. 정치와 예술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영화, 노 베어스가 그것을 보여준다.
영화 제작이 저항이 되는 방식
노 베어스는 파나히 감독이 출국금지 상태에서 만든 영화다. 이란 당국은 그에게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는 만들었다. 그 행위 자체가 이 영화의 내용보다 먼저 말하는 것이 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이 감독에게 단순한 직업 활동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이고, 동시에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 파나히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이란 당국의 제재를 받아온 역사는 길다. 그는 이미 이전에도 여러 차례 영화 제작 금지와 투옥을 겪었다. 그럼에도 계속 영화를 만들었다. 노 베어스의 공개를 앞두고 그는 다시 체포되어 투옥됐다. 그리고 베니스 영화제는 그에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여했다. 이 상을 그는 감옥 안에서 받았다. 그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세계에 전달하는 메시지의 일부다.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억압에 맞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맞섬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이 영화가 감독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고 자유를 요구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 파나히 감독이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제재와 투옥을 겪으면서도 계속 영화를 만드는 그 의지가 이 영화 자체보다 먼저 말하는 것이 있다. 그 의지 앞에서 이 영화를 단순히 비평의 대상으로 보기가 어렵다.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가 이렇게 무거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알려준다. 노 베어스를 만드는 것이 파나히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영화가 그 의미를 직접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감독의 투쟁을 목격하는 경험이다. 그 목격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남는 이유다. 파나히 감독이 감옥에 있는 동안 베니스가 이 영화에 상을 준 것, 그 장면이 이 영화 바깥에서 이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와 현실이 이렇게 겹쳐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그 겹침이 이 영화를 보는 경험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단순한 저항 서사를 넘어서는 이유
노 베어스가 단순히 감독의 처지를 기록한 자전적 영화에 그쳤다면 이 정도의 울림이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처지를 담으면서 동시에 이란 사회의 다른 구속들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을의 오랜 관습이 연인들의 자유를 막는 방식, 그 관습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강제되는 방식. 파나히 감독이 겪는 국가 권력의 구속과 마을 사람들이 겪는 관습의 구속이 이 영화에서 동일한 구조로 그려진다. 구속이 어디서 오든, 그 구속이 사랑과 자유에 가하는 압력이 같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국경 마을이라는 배경도 이 영화에서 상징적이다. 이란과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의 경계에 있는 이 마을은 경계 그 자체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 파나히 감독은 원격으로 다른 경계를 찍는다. 경계 위에 선 사람이 경계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 그 메타적 구조가 이 영화의 깊이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노 베어스가 이동진 평론가의 2024년 첫 만점작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깊이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파나히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는 말이 그것이다. 노 베어스는 이란에서는 상영 금지된 영화다. 세계 영화제가 극찬하는 영화를 자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역설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 역설을 영화 안에서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파나히 감독이다. 경계와 구속이 자유와 창작에 대한 욕망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 이 영화가 그 역설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다. 파나히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 영화가 이렇게 깊어진다는 것. 마을 사람들이 연인들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할 때, 그 연인들의 사랑이 더 간절해지는 것처럼. 이 영화 안의 모든 이야기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금지될수록 더 강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게 노 베어스다. 노 베어스는 어둠 속에서 만들어진 가장 밝은 영화 중 하나다. 그 밝음이 어디서 오는지를 이 영화가 보여준다. 자유를 향한 의지에서 온다는 것, 그게 파나히 감독이 이 영화로 하는 말이다. 그 말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다. 세계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