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1987년 이란에서 만들어진 83분짜리 영화로, 크리테리언 컬렉션에서 선정한 거장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키아로스타미 입문작으로 추천하는 이유, 단순한 전제가 만들어내는 보편적 감동의 구조, 그리고 코케르 트릴로지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 이 영화가 가진 위치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란 영화와 키아로스타미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왜 이 작품이 가장 좋은 출발점인지를 설명합니다. 여덟 살 소년 아흐마드가 실수로 친구의 공책을 집에 가져온 뒤 돌려주기 위해 두 마을을 헤매는 하루를 담은 이 영화는, 소박한 설정 안에 하루가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긴장감과 경이로움을 모두 담아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에서 코케르 마을 아이들을 실제 상황에 반응하게 하는 방식으로 연출했고, 그 자연스러움이 화면 위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거창한 사건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한 아이의 선한 의도가 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갑니다.
키아로스타미 입문작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분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체리향기, 클로즈업,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줄 거야까지 걸작들이 쌓여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그 장벽이 거의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제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숙제를 하지 못하면 선생님에게 퇴학 위협을 받은 친구를 위해 아이가 공책을 돌려주러 가는 이야기. 이보다 더 단순한 출발점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순함이 이 영화를 쉽게 만드는 동시에 깊게 만듭니다. 아흐마드가 공책을 돌려주러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방향을 바꾸고, 기다리게 하고, 무시합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고집과 선의가 얼마나 순수한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키아로스타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구조가 가장 직선적입니다. 비선형 서사나 복잡한 메타 구조 없이 아이의 하루를 따라가면 됩니다. 그래서 이란 영화나 예술 영화가 낯선 분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열리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코케르 트릴로지의 나머지 두 편, 그리고 키아로스타미의 다른 영화들로 넘어가면 이 감독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 금방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흐마드가 언덕을 오르내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이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공책을 못 돌려주면 어떡하지, 친구가 정말 퇴학당하면 어떡하지. 83분짜리 영화 안에서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것, 그게 이 감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한 전제가 만들어내는 보편적 감동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힘은 단순함에서 옵니다. 아흐마드의 행동 동기는 매우 명확합니다. 친구가 숙제를 못 하면 퇴학당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 이 동기가 순수하기 때문에 관객은 처음부터 아흐마드의 편이 됩니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에서 코케르 마을 아이들을 실제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는데, 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의 경우 아이의 공책에 사진을 끼워두고 선생님이 그걸 발견하면 화를 낼 것이라고만 알려준 뒤 자연스럽게 촬영했습니다. 이 비연기적 접근이 화면에 다큐멘터리 같은 질감을 만들어줍니다. 영화가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섬세하게 걸쳐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흐마드가 두 마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여정은 이란 북부 농촌의 풍경을 담는 동시에 그 사회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어른들이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 방식,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규칙과 권위, 그 안에서 아이가 혼자 도덕적 선택을 하고 실행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설명 없이 화면 위에서 일어납니다. 이란 사회를 모르는 관객도 이 영화가 그리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 규칙과 개인의 선의 사이의 긴장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주제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리테리언 채널에서 그레타 거윅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짧은 영상이 있는데, 그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단순한 이야기 안에 이렇게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 키아로스타미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감각이 이 영화에서 온다는 걸, 여러 감독과 영화인들의 증언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코케르 트릴로지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의 위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독립적으로 완결된 영화이지만 동시에 코케르 트릴로지의 출발점입니다. 트릴로지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로 이루어지며, 이란 북부 마을 코케르를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트릴로지라는 명칭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세 영화가 서로를 반영하고 참조하는 방식이 영화 이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트릴로지로 인식됐습니다. 두 번째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1990년이란 대지진 이후 코케르를 다시 찾아 첫 번째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들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러 가는 감독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픽션과 현실이 겹치는 구조가 더 복잡해지는 방식입니다. 세 번째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두 번째 영화를 찍는 과정 자체를 담은 메타적 구조를 가집니다. 이 세 영화를 순서대로 보면 키아로스타미가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해체해 나가는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장 직선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점점 복잡해지는 키아로스타미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코케르 트릴로지를 순서대로 다 보고 나서 첫 번째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아이의 하루였는데, 이후 두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보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이 보였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다른 깊이로 들어가는 경험, 그게 키아로스타미가 세 편에 걸쳐 설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문작으로 이 영화를 권하는 건 이 여정의 출발점이 가장 따뜻하고 가장 단순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