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은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관객상 8관왕을 차지한 레바논 영화다. 레바논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나딘 라바키는 아랍 여성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베이루트 빈민가의 12살 소년 자인이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 시리아 난민 소년이고, 출연진 대부분이 자신의 실제 삶과 비슷한 처지의 비직업 배우들이다. 이 영화가 자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을 묻는지, 비직업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이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는지,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 가버나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 글에서 이야기한다. 뉴욕 타임스 올해의 영화 10선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주목을 받은 이유, 보면 알게 된다. 자인의 눈을 한 번 보면 이 영화를 잊기 어렵다. 그 눈 안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분노와 슬픔과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동시에 있는 그 눈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든다.
가버나움, 자인이 묻는 것
가버나움에서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는 이유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판사가 묻는다. 왜 부모를 고소하려 하느냐고. 자인의 대답이 이 영화의 전부다. 나를 낳았기 때문에. 이 대사가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영화 안에서 그 대사를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자인은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태어났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 그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부모를 고소한다. 이 역설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구조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베이루트 빈민가를 3년 동안 취재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느껴진다. 그 3년이 이 영화를 사실처럼 만드는 이유다.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가 영화 안에서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실제 난민, 실제 불법 체류자, 실제 빈민의 삶이 이 영화 안에 있다. 그 실재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동시에 극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픽션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 가버나움이 그것을 증명한다. 실제 난민, 실제 불법 체류자, 실제 빈민의 삶이 이 영화 안에 있다. 그 실재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동시에 극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자인이 여동생을 지키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 아팠다. 12살 소년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한다. 그 감당이 이 영화에서 가장 직접적인 감정이다. 이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자인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이 소년은 12살의 나이에 이미 알고 있다. 그 앎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세상이 이 소년에게 불공평하다는 것을 이 소년이 알고 있고, 그것에 분노한다. 그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자인의 분노가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분노가 관객에게 전달될 때,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 영화가 아니라 질문하는 영화가 된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자인의 분노가 묻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운 일이다. 자인의 눈이 우리를 향해 있다는 것, 그 시선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실제 삶이 연기가 된 방식
가버나움에서 자인 알 라피아의 연기가 이 영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 시리아 난민 소년이 자신의 삶과 비슷한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자인을 처음 보는 순간 이 역할을 맡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 직감이 맞았다. 자인이 화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냥 그 삶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자연스러움이 이 영화의 감동을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다. 라힐 역을 맡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도 마찬가지다. 실제 에티오피아 불법 체류자가 불법 체류자를 연기한다. 그 일치가 이 영화에서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칸 영화제 초청 일주일 전까지 자인 알 라피아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모두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출생 신고도, 신분증도 없었다. 영화제 일주일 전에야 겨우 신분증이 발급됐다. 그 사실이 이 영화를 보는 경험에 다른 차원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자인이 어린 아기 요나스를 돌보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슬프다. 12살 소년이 혼자 아기를 돌보는 그 장면들이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이다. 자인이 요나스를 마치 자신의 아기처럼 돌보는 그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이다. 아직 아이인 자인이 더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것, 그 역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부분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이 장면들을 담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3년간 베이루트 빈민가를 취재한 감독이 이 장면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을 때, 그 카메라가 담는 것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있는 이유가 그 카메라의 태도에 있다. 자인 알 라피아의 연기가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이 경계를 지우는 이유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처럼 이 소년이 화면 안에 있다. 그 존재가 이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로 만든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이 소년을 발견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것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예수가 기적을 행했지만 그 은혜를 외면하여 저주받은 도시다. 그 이름을 베이루트 빈민가에 붙인 것이 이 영화의 감독이 말하려는 것을 담는다. 기적이 가능한 곳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구원이 필요한 곳에서 구원이 오지 않는 세계. 그 세계 안에 자인이 있다. 이 영화가 빈곤과 난민 문제를 다루지만 그것을 감상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자인을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자인은 이 세계에서 싸우고 분노하고 행동한다. 그 주체성이 이 영화를 빈곤 포르노에서 꺼낸다. 자인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 포기하지 않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12살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직접적인 비판이다. 영화가 끝나는 방식도 이 영화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인이 감옥 안에서 처음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으며 웃는 그 마지막 장면. 법적으로 존재하게 된 순간, 처음으로 웃는 소년. 그 웃음이 이 영화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를 낳는 것이 어떤 책임을 수반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자인의 질문이 단순히 그의 부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아이들을 이 세계에 보낸 것이 부모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가버나움이 그것을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인이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자인 알 라피아는 촬영 이후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 망명이 허용됐다. 그 사실이 이 영화가 현실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나딘 라바키 감독이 출연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 그 이상임을 말한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가버나움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이 아이들의 삶을 실제로 바꿨다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이유다. 영화가 현실에 이런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이 영화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버나움은 보는 영화이기 전에 마주하는 영화다.